왕신된장이 소환해낸 말리의 소울푸드 '숨발라'

시작은 한국에서 가져간 작은 된장 한 통이었다.
모로코의 첫 인상은 향신료였다. 재래시장 골목마다 큐민과 강황, 파프리카와 계피 냄새가 피어올랐다. 모로코 음식은 향을 숨기지 않았다. 향신료는 고기 냄새를 다듬고, 지방의 무게를 덜어주었다.
그 향의 도시에서 발효는 뜻밖의 방식으로 다시 나타났다. 왕신된장이 그 문을 열었다.
이브 사마케(Yves Samaké) 학장의 집 부엌이었다. 리츠칼튼 계열 호텔 주방을 거친 그가 직접 저녁을 준비했다. 프랑스인 어머니와 말리 출신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 유럽과 아프리카의 가정과 미국의 최고급 호텔 주방을 두루 거쳤다.
주방엔 큐민과 마늘 냄새가 은은하게 배어 있었다. 팬 위에서 기름이 지글거렸다. 그 옆 식탁 위에 우리는 왕신된장 한통을 선물로 꺼냈다. 갈색의 진한 덩어리. 짭조름한 냄새. 콩이 시간을 지나 만들어낸 깊은 향. 한국 사람에겐 집밥 냄새지만, 처음 접하는 이에겐 낯선 발효의 신호일 수 있다.
이브 학장이 뚜껑을 열었다. 코를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았다. 세프답게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의 표정이 바뀌었다.
"이건 숨발라와 닮았습니다."
그 한마디에 식탁의 대화가 바뀌었다. 모로코의 향신료로 시작된 저녁이 서아프리카 말리의 발효 이야기로 넘어갔다.
같은 아프리카, 다른 두 세계
그때 새삼 깨달았다. 아프리카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이지만, 사하라를 기준으로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모로코와 말리는 같은 대륙이지만 지리도, 역사도, 식탁도 다르다. 모로코는 대서양과 지중해를 마주한다. 아랍과 아마지그, 이슬람과 유럽의 흔적이 겹쳐 있다. 그 식탁엔 향신료와 올리브, 밀과 양고기, 타진과 민트차가 있다. 맛의 문을 여는 건 향이었다.
말리는 바다 없는 서아프리카 내륙국이다. 북쪽엔 사하라, 중부는 사헬, 남쪽은 사바나와 니제르강 유역이다. 그 식탁엔 수수와 기장, 오크라와 팜유, 그리고 숨발라가 있다. 이브 학장의 삶이 그 둘을 이었다. 프랑스에서 나고 자라 미국에서 셰프로 일했고, 지금은 마라케시에 산다. 미각 깊은 곳엔 말리 출신 아버지의 음식이 남아 있었다.
아버지의 음식, 토와 숨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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