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 중인 가족까지... 아들에게 걸려온 기막힌 전화

2002년, 만삭이 된 아내의 배에 손가락으로 박자를 두드리면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네 번 두드리면 아이도 네 번 발길질을 했고, 다섯 번 두드리면 또 비슷한 횟수로 반응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신기했다. 그렇게 우리는 아이가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교감했다.
그 아이는 건강하게 자라 입대했다. 대학에 입학한 해는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캠퍼스의 설렘도, 친구들과의 추억도 대부분 비대면 강의와 거리두기 속에 묻혀 버렸다. 아들은 제대로 된 대학 생활도 해보지 못한 채 군 입대를 선택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일이 찾아왔다. 2023년 4월 1일 만우절, 거짓말처럼 나는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대학병원 담당 교수는 골든타임을 넘기고도 살아 있는 것이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오른쪽 몸의 감각은 무뎌졌고 손은 심하게 떨렸다.
당시 첫째는 군 복무 중이었고 둘째는 부산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병을 숨겼다. 그러나 첫째가 군에서 휴가를 나오면서 결국 내 상태를 알게 되었고, 둘째도 뒤이어 사실을 알 수밖에 없었다.
병원 침대에 누운 나는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오른손은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고, 짧은 문장 하나를 완성하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글쓰기를 멈출 수는 없었다. 투병기를 써 내려가며, 나와 같은 절망 속에 있는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전하고 싶었다.
아직 쉰 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찾아온 시련이었지만, 살아남은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었다. 내게 주어진 삶에는 반드시 전해야 할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 믿음은 어느새 사명감이 되었다. 그래서 떨리는 손으로 하루하루 공개 글을 써 내려갔다.
아들에게 걸려온 사기범의 전화
때는 명절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명절 연휴에는 의료진이 대부분 휴무에 들어가는 탓에, 나는 치료를 잠시 중단한 채 퇴원해 집에서 회복하고 있었다. 마침 군 복무를 마무리하던 첫째도 말년 휴가를 나와 있었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함께 명절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집안에는 모처럼 웃음이 돌았다. 하지만 그 평온은 오래가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아들은 갑자기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고 급히 집을 나섰다. 처음에는 친구와 약속이 있거나 중요한 통화를 하는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 휴대전화는 계속 통화 중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갔다.
여섯 시간이 넘도록 연락이 닿지 않자 직장에 있던 아내도 안절부절못했고, 나 역시 애써 마음을 다잡으려 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전날 말년휴가를 나온 아들이 아침부터 연락이 두절됐다고 어눌한 말로 여러 차례 설명했지만, 돌아온 질문은 "가정불화가 있었느냐", "평소 가출한 적이 있었느냐"는 것이었다.
당시 경찰도 실종 가능성 등 여러 상황을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겠지만, 극도의 불안감 속에 있던 우리 가족에게는 사건의 긴박함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더는 집에서 기다릴 수 없었던 나는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을 이끌고 직접 아들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다.
결국 오전 9시에 집을 나간 아이를 다시 만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집 앞이었다. 군 생활로 살이 쏙 빠진 아들의 손에는 구글 기프트 카드와 수십 장의 ATM 거래 영수증이 들려 있었다. 얼굴은 핏기가 없었고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해 기운조차 없어 보였다. 우선 아이를 해장국집으로 데려갔다. 아들은 국밥 한 그릇을 순식간에 비웠다. 식사를 마친 뒤에야 나는 참았던 감정을 쏟아냈다.
"아빠가 투병 중인데 이렇게 연락도 안 되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한참 말없이 있던 아들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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