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직접 연기한 나홍진... "눈물 흐르는 속도까지 계산했다"

"지난 10년 사이에 서로 엄청 많은 변화가 있지 않았나요? 이렇게 서로 짠해지네요(웃음)."
영화 <곡성> 이후 10년 만에 만난 나홍진 감독이 건넨 인사말이었다. "복귀가 너무 오래 걸렸다"는 화답에 그는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호프>를 준비해 온 과정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머릿속에 한 장면이 그려질 때까지 아침에 눈뜨면 커피 마시면서 생각하고, 밥 먹으며 생각하고, 담배 피우며 생각하고, 목욕탕에 가서도 생각하고 그랬다."
시간이 흘렀어도 변하지 않은 게 있다. 나홍진의 영화는 매번 설왕설래를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이다. 7월 15일 개봉해 한창 상영 중인 <호프> 또한 그렇다. 1980년대 무렵을 연상시키는 가상의 마을 호포항에 나타난 외계 존재와 이를 쫓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객마다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나 감독은 거의 일관되게 답해왔다. "우주적 관점에서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다"고.
지난 5월 17일 제79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처음 공개된 뒤, 나 감독과 배우들을 통해 영화와 관련한 많은 정보가 이미 나온 상황이다. 7월 29일 서울 성내동의 사무실에서 만난 나홍진 감독에게 조금은 다른 질문을 해야 했다. 특정 장면을 중심으로 질문했고, 나 감독은 기존에 알려진 이야기에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보탰다.
[기자의 장면] 바미기르와 범석의 눈맞춤... "<호프>의 주제 담겼다"
알려진 대로 <호프>는 15년 전 미국 여행 중에 들른 한 마을 풍경에서 비롯됐다. 영화 제목과 동명인 그 마을은 사람의 흔적이 없다시피 했다고 한다. 이게 전부는 아니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만난 한 평론가가 건넨 "(<곡성>까지 보고 나니) 이제야 나 감독의 결이 보인다"는 말이 있었고, "그 결로부터 도망쳐야겠다"는 나 감독의 결심도 작용했다.
그 무렵 한 광고대행사의 제안으로 쓴 단편 시나리오도 주요 동기였다. "한 식당을 찾은 경찰이 잠시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니 모든 사람이 사라졌고, TV에선 이상한 뉴스가 방영되고 있었다는 내용이었는데 이걸 확장시키고 싶기도 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리고 <호프> 직전까지 준비했다가 중단한 두 장편 프로젝트를 빼놓을 수 없었다. 1982년 경남 의령에서 주민 56명이 희생된 '우범곤 순경 총기 사건'과 한국형 크리쳐를 표방한 '로보트 태권브이'다. 나 감독은 "우 순경 사건 관련자들을 만나며 매우 자세하게 취재했다.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분명 <호프>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고, 태권브이 또한 제 무의식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답했다.
속초에 거주하는 나 감독은 2018년 초고를 완성한 뒤 웨스트월드(시각비주얼 특화 회사) 손승현 대표를 대포항으로 불렀다. "우리가 해보자"는 말로 의기투합해 지금의 <호프>가 탄생할 수 있었다. 경찰인 범석(황정민)과 성애(정호연), 마을 청년 성기(조인성) 일행이 외계 존재들과 쫓고 쫓기는 단순한 서사는 밀도 높은 액션으로 채워졌고, 한 장면이 유독 마음에 남았다. 해당 장면은 아래와 같다.
성애가 운전하는 순찰차를 탄 범석은 마을 주민들을 무참히 공격한 바미기르(카메론 브리튼)를 쫓으며 총을 난사한다. 직전까지 자신들을 공격해 오던 바미기르가 도망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성애가 속도를 높여 바미기르와 평행으로 달리던 찰나 범석은 바미기르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되고, 순간 당황한다. 바미기르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흐르고 있었던 것.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장면이다. 사냥감이 사냥꾼이 되고, 사냥하던 이들이 사냥감이 되는 순간이다. 서로의 입장이 뒤바뀐다. 그 짧은 순간에 영화의 주제 의식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악으로 알았던 놈의 얼굴을 마주하니 어떤 사연이 느껴지고, 그놈 입장이 궁금해진다. 그렇다면 그 입장은 무엇일까. 그 뒤에 나오는 이야기가 답변일 수 있다."
제작사가 28일 공개한 영상에는 이 장면을 위해 나 감독이 직접 블루 스크린 앞에서 연기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후반 작업을 위한 테스트 영상이었다. 그는 "눈물과 땀이 가장 정교하고 이상적인 형태로 흐르도록 속도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바미기르(카메론 브리튼), 아이도보르(테일러 러셀), 조르(알리시아 비칸데르) 등 외계 존재 이름에 얽힌 농담처럼 알려진 일화 또한 "맞다"고 했다. "세자를 지키며 보초를 서야 하는데 밤이 너무 길어! 그러다 바미기르가 됐고, 세자를 돌봐야 하니 아이도보르가 됐다"며 그가 재차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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