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나 때문에 썼겠구먼"

지난 6월 15일 아침, 카톡을 열자 고향 후배 박준홍 전 대한축구협회장이 초대장을 보냈다. 잔글씨라 돋보기안경을 끼고 읽었다.
"초대합니다. 김종필 총재 탄생 100주년 기념 및 8주기 추도식." 초대장이었다. 나는 지난해 12월 10일로 만 80세를 넘긴 이후 나들이를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그 무렵 친구 모임에 갔다가 낙상하여 몇 달 고생했기 때문이다. 카톡을 닫지 못한 채 한동안 고심했다. 사실 나는 교육자로 평생 정치권과는 관계없이 살아온 사람이다. 그렇게 볼 때, 내가 꼭 그 행사에 참석해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고향 구미에서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김종필 총리 부인 박영옥 여사의 친정과 우리 집은 한때 이웃사촌으로 서로 쌀뒤주 사정까지 알고 지낸 돈독한 터였다. 더욱이 박영옥 여사가 구미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할 때, 나의 아버지도 동료 교사였다. 게다가 그분 선친 박상희 선생은 나의 아버지가 매우 존경하고 따랐던 민족주의자로 고향 사람들로부터 크게 존경을 받았던 어르신이었다.
1950년 후반 어느 날, 신문사네(고향마을에서는 그 댁을 그렇게 불렀음) 큰따님(박영옥)이 남편(당시 김종필 중령)과 따님 등 세 가족이 서울에서 친정에 왔다가 장 구경을 겸하여 장터 어귀의 우리 집에 들르셨다. 그날 우리 집 마루에서 세 식구는 물 한 모금 드시고 가셨다. 그때 나는 까까 머리의 머리 때 낀 시골 소년으로 '예리'라는 JP 따님 이름이 이국적이라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때 어른들(나의 할머니와 고모)은 신문사네 사위(김종필)는 세상에 없는 '애처가'라고 칭찬이 아주 자자했다. 결혼 후, 자기 부인을 대학에 진학 시키는 신식 신랑이며, 자기의 지프로 자택 청구동에서 아내가 다니는 용산구 청파동 학교(숙명여대)까지 날마다 등교를 시켜 준다고도 했다. 아마 그 당시로써는 그런 일은 좀처럼 드문 일이었을 것이다.(관련기사: 박영옥 여사 빈소에 다녀와서)
우리나라 속담에 "처삼촌(妻三寸) 벌초 하듯"이란 말이 있다. 이는 그다지 정성을 들이지 않고 눈가림으로 대충대충 일할 때 쓰는 말이다. 박정희 대통령과 김종필 국무총리와 사적 관계는, 김종필 총리 편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은 처삼촌이다. 김 총리의 작고하신 장인 고 박상희 선생의 막냇동생이 박정희 대통령이다.
경상도 벽촌 구미 금오산 기슭 촌놈 박정희 소장이 5·16 쿠데타에 성공하기까지는 그런 인척 관계로, 치밀하고 머리 회전이 빠른 김종필 중령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박정희 대통령 편에서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그분이 아버지 이상으로 따르고 존경하며 물심양면 성원해 준 셋째 상희 형 맏딸 박영옥의 신랑인 '조카사위'다. 또한, 김종필 - 박영옥, 이들 부부의 사실상 중매는 박정희가 선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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