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고 그런 영화들이 지겨울 때, '입맛 싹 도는' 별미 같은 신작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란 게 그렇다. 극화된 현실의 모방이나 재현, 혹은 현실을 그대로 기록한 다큐멘터리일지라도 관객으로 하여금 작품에 온전히 몰입하길 기대하게 마련이다. 다른 자극을 차단한 어둡고 조용한 환경에서 빛이 쏘아지는 스크린 위에 투사되는 영화란 매체는 적어도 러닝타임 동안에는 그 자체로 유일하고 가치 있는 현실로서의 자격을 얻는다. 관객은 모든 주의를 기울여서 감독이 빚어낸 스크린 위의 이야기를 봐야만 한다. 감각하고 관찰하며 이해하고 감동하길 요구받는다. 그것이 영화란 예술이 극장에서 갖는 독점적 지위다.
영화 속 인물의 기쁨과 슬픔이, 절망과 영광이 하나하나 만들어진 것일 뿐인데도, 관객은 영화 속 인물들을 따라서 소리 내어 울고 웃는다. 마치 제가 직접 영화 속 일을 겪은 것처럼, 그 모든 결과가 제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는 극장을 나가면 전혀 관계없는 삶을 살 것인데도.
혹자는 영화란 그저 작가의 이야기일 뿐, 영화를 진실로 움직이는 것은 관객의 의지라고 말하기도 한다. 영화를 보고자 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알아내고자 하는 관객의 의지와 관심이야말로 영화를 지탱하는 주된 동력이란 얘기다. 그는 영화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에게서 비롯되는 외재적 힘이다. 그렇다면 영화의 진실한 힘은 영화 내부가 아닌 외부 관객과의 상호작용에 있는지 모른다. 중요한 건 어떻게 관객과 관계 맺는가 하는 것이지 다른 무엇이 아니란 얘기다. 영화는 크랭크업, 혹은 후반작업이 끝나는 날이 아니라 극장에서 관객이 보는 순간 완성된다는 것이겠다.
쉬운 몰입 대신에 사고와 유희를
김경래 감독의 <이인>이 최근 개봉해 관객과 만났다. 전작 <레슨>에 이어 신작까지 본 이라면 그가 독창적 영화세계를 가진 감독이란 사실을 납득할 테다. 김경래 감독의 영화에선 종종 관객이 사실이라 믿는 것을 흔드는 순간이 등장한다.
<레슨>은 영어와 피아노에 재능이 있는 남녀가 서로의 장기를 바꾸어 가르치는 일종의 재능교환을 하며 빚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영화는 주인공인 경민이 연인인 선희, 그리고 제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여자 영원을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두 갈래로 나누어 보여준다. 선형적으로 전개되는 통상의 서사를 가진 작품과 달리 영화는 두 관계 중 무엇이 앞이고 다른 것이 뒤인지 보여주지 않는다. 도리어 영화 속 시간이 실제 선후와 다를 수 있다는 단서를 인물의 대사 등을 통해 은근히 암시한다.
그를 통해 관객은 자연히 시간순이 아니겠느냐 하였던 선입견을 스스로 부정해야 하는 순간과 맞닥뜨린다. 제가 저 자신을 부인하며 영화가 진실로 담고 있는 이야기에 보다 다가서게 된다. 영화가 아닌 관객 안에서 빚어지는 이 같은 혼란은 관객 자신의 욕구며 오해를 동력 삼아 작품을 보다 깊이 유희하도록 이끈다. 쉬운 몰입과 공감을 바라는 게 아니라 의심과 의문을 부각해 사고하도록 이끄는 게 제 목적이라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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