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전두환에 "폭탄" 같던 기사들, 이 미국인들이 지킨 광주와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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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이 "폭동" 취급되던 1980년 여름, 권력을 틀어쥐려던 전두환에게 "폭탄"(제임스 메이어 당시 미국 평화봉사단장 표현)과 같은 기사들이 터져 나왔다. 스웨덴 스톡홀름발 AFP·AP통신의 보도였다. "광주에 있던 미국 평화봉사단원 팀 원버그(Tim Warnberg)와 데이비드 돌린저(David Dolinger)"를 취재원으로 한 이 기사들은 5·18을 "한국 공수부대가 민간인을 죽인 야만적이고 무차별적인 학살"이라고 명확히 짚었다.
사실상 신군부의 수족이었던 한국 정부는 발칵 뒤집혔다. 즉시 반박 성명서를 발표했고 주한 미대사관을 통해 기사에 취재원으로 나와 있는 두 사람의 공개 부인을 요구했다. 더해 곧 입국할 예정이던 평화봉사단의 차기 단원의 파견 거부까지도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이 기사들은 1980년 7월 두 차례(15, 20일)에 걸쳐 보도됐다. 광주에서 5·18을 직접 경험한 스물 다섯 청년 팀 원버그와 데이비드 돌린저는 1980년 5월 말 동료 평화봉사단원들에게 "잔혹했던 대학살"을 증언하고 사진, 메모 등이 수록된 자료집을 건넸다. 이를 받은 캐롤린 투르비필(Carolyn Turbyfill)과 스티븐 헌지커(Steven Hunziker)는 일본을 거쳐 스웨덴으로 향했고 "캐롤린 페리"와 "스티븐 클라크"라는 가명으로 제보에 성공해 5·18의 실상을 세계에 알릴 수 있었다.
팀, 데이비드 그리고 캐롤린, 스티븐의 이름은 당시 외무부 기밀 문서에도 기록돼 있다. 이 문서에 따르면, 해당 외신 보도들은 당시 내란 우두머리 전두환이 상임위원장으로 있고 신군부 강경파로 구성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에도 보고됐다.
팀 원버그는 1993년, 스티븐 헌지커는 2014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특히 1978년 광주로 파견된 팀은 5·18을 아주 초기부터 목격했고 위 스웨덴 보도의 결정적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5·18 당시 고 위르겐 힌츠페터(2016년 작고) 등 외신 기자의 통역을 돕거나 그들과 직접 인터뷰했으며 계엄군으로부터 광주 시민들을 보호하다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5·18을 경험한 후 팀은 의사가 되려던 꿈을 접고 한국학 전공을 택해 하와이대학 석·박사과정에 입학했고 이곳에서 1987년 영어권 최초의 5·18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오마이뉴스>는 팀과 함께 5·18을 직접 목격한 데이비드 돌린저(70)와 두 사람으로부터 받은 증언·자료를 받아 스웨덴으로 건너간 캐롤린 투르비필(71)을 각각 지난 3월 16, 19일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데이비드는 "광주 시민들이 우리에게 '목격한 것을 꼭 바깥에 알려달라'고 부탁했다"며 "우리는 그 약속을 저버릴 수 없었다"라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팀은 광주 시민들, 특히 5·18 당시 광주에서 살아남지 못한 이들에게 목소리를 주고 싶어했다"라고 강조했다.
"광주 시민들은 팀의 친구들이었고, 매일 만나던 이웃이었습니다. 그들은 팀에게 먼저 베풀었고, 따뜻하게 대해줬습니다. 팀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세상에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것이 팀이 광주 시민들에게 받은 호의와 사랑에 보답하는 방식이었습니다." - 데이비드 돌린저
대구에서 평화봉사단으로 근무하다 서울에서 만난 팀과 데이비드에게 5·18 자료를 받은 캐롤린은 이를 바지 안에 숨겨 출국하던 때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캐롤린은 일본에서 제보에 실패한 후 스웨덴까지 건너가 결국 광주에서의 참상을 알렸던 때를 떠올리며 "팀과 데이비드의 용기와 의지 덕분"이라고 말했다.
"광주 학살을 외부에 알리는 것은 두려웠습니다. 자료집을 소지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팀과 데이비드는 엄청난 일들을 겪고도 계속 진실을 알리려고 했고 한국 정부와 미대사관에 맞섰으며 다시 광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저는 두려움마저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결국 (스티브 헌지커와 저는) 이를 알리고자 나서게 됐습니다." - 캐롤린 투르비필
'주먹밥' 거절했던 그 마음
함께 평화봉사단원으로 선발돼 1978년 한국에 온 팀과 데이비드는 각각 전남대병원과 영암보건소에서 근무했다. 데이비드는 1980년 5월 24일 당시 전남도청에서 하룻밤을 지낸 유일한 외국인이며 2022년 회고록 <나의 이름은 임대운>을 출판한 뒤 2025년 광주 명예시민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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