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집 명령 받은 청년들을 죽음으로 등 떠민 술의 정체

1916년 6월, 영국 요크셔 램스덴의 작은 펍. 바 테이블 한 구석, 군복을 입은 한 남자가 맥주를 마시고 있다. 남자는 한쪽 팔이 없다. 그때, 그를 보고 다가오는 세 청년. 이들 손에는 징집명령서가 들려 있었다. 군인은 전선에 가면 자신의 팔을 찾아 달라고 농담을 건네지만, 이내 맥주를 비우고 자리를 떠났다. 이 청년들은 다시 살아 돌아와 다시 맥주를 마실 수 있을까?
1917년 4월, 프랑스 북부 크루자이유 숲. 참호에서 나와 돌격하는 군인들을 가로지르며 한 사내가 전력 질주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남자, 방향이 이상하다. 독일군이 아니라, 영국군 지휘소가 있는 참호를 향해 뛰고 있는 게 아닌가. 그의 목적은 이 작전 책임자인 매켄지 중령에게 편지를 전달하는 것. 그 안에는 '독일에 대한 추격 및 공격을 즉시 중단하라'는 에린모어 장군의 명령이 들어있었다. 이 편지가 전달되지 않으면 독일군이 파놓은 함정에 영국군이 몰살 당할 게 뻔했다. 과연 그는 포화 속을 뚫고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 것인가?
1918년 11월, 프랑스 북부 라 말메종. 독일군과 프랑스군이 최후의 전투를 벌이고 있다. 독일 장군 프리드리히는 곧 휴전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도 군인은 명예를 지켜야 한다는 그릇된 광기로 프랑스 참호를 탈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던 병사들은 명령에 따라 사지로 돌격하고, 프랑스군 또한 갑작스러운 공격에 참호는 아수라장이 된다. 모든 전우를 잃은 독일 병사 파울, 그는 그토록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인류의 비극, 1차 세계 대전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가 암살된 '사라예보 사건'으로 발발된 제1차 대전은 제국주의의 팽창과 과도한 군비 경쟁 그리고 민족주의의 분출이 얽힌 불행한 결과였다. 만약 빌헬름 2세 독일 황제가 비스마르크의 조언을 받아들여 식민지 팽창 정책을 전개하지 않았다면 유럽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아니, 적어도 천만 명이 넘는 죽음과 희생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사라예보 사건'은 발칸 반도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자 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이를 견제한 러시아 제국의 갈등이 빚어낸 비극이었다. 세르비아 민족주의 청년이 황태자 부부를 암살하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고, 세르비아의 뒤를 봐주고 있던 러시아가 맞대응을 하며 세계 대전의 도화선에 불이 붙은 것이다.
전쟁은 합리적 판단 없이 서로 맺어진 동맹 문서에 따라 삽시간에 불타올랐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러시아 제국이 맞붙자 각자 동맹 관계에 있던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포성이 울렸고, 이에 위협을 느낀 영국이 프랑스를 돕기 위해 참전을 결심한 것이다.
순식간에 타오른 전쟁의 불씨는 유럽 전역을 뒤덮었다. 새파란 젊은이들이 늙고 오만한 지도자들의 결정에 따라 사지로 뛰어들었다. 이들은 소모품이었다. 한 치의 땅을 뺏기 위해 목숨을 잃으면, 또 다른 병사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1차 세계 대전에서 150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이렇게 많은 희생이 있었던 이유는 전술과 무기의 비대칭성 때문이었다. 전투기, 전차, 기관총 같이 무기 앞에서 장군들은 '돌격 앞으로'를 외쳤다. 참호전은 이런 구시대 전술의 비극적 결과였다.
1916, 1917, 1918
1916년 영국 요크셔, 1917년 프랑스 크루자이유 숲, 1918년 프랑스 라 말메종, 세 장면은 마치 한 영화 속 장면처럼 보이지만, 사실 모두 다른 영화다. 1차 세계 대전이라는 배경과 그 속에서 소모품으로 희생되는 젊은이들에서 세 영화는 만난다.
2025년 개봉한 <포화 속의 합창>(The Choral)은 1916년 영국 요크셔 램스덴 마을 합창단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시의원이자 방직 공장주, 덕스버리는 합창단의 운영자이자 후원자다. 그는 오랫동안 해왔던 합창 공연을 준비하려 하지만 18세 이상 남자들은 모두 징집 되어 마을에는 젊은 남자를 찾을 수 없었다.
전통적으로 문화적 지위를 과시하는 모임이었던 마을 합창단(Choral Society)은 자본가 계급이나 중산층 이상이 주도하는 '그들만의 리그'였다. 그러나 전쟁으로 합창단원이 구성조차 어려워지자, 덕스버리는 큰 결심을 한다.
노래만 할 수 있다면 모두 단원으로 받아들였다. 심지어 독일 유학에서 돌아와 사람들의 불신을 받던 거스리 박사를 지휘관으로 영입했다. 우여곡절 끝에 램스덴 합창단은 에드워드 엘가의 '제론티우스의 꿈'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해석을 하며 공연을 끝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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