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영의 아내 백정화입니다, 이제 남편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요
요즘 자주 꾸는 꿈 얘기를 하나 들려드릴게요.
분명 감옥 안이었습니다. 양복을 차려입은 대여섯 명이 누군가를 둘러싸고 있더군요. 한 명은 쇠조끼를 또 다른 한 명은 입마개를 들고 있었습니다. 저는 겁이 났지만 한발 한발 다가가 쇠창살 사이를 들여다봤습니다. 양복쟁이들은 덩치 큰 누군가를 들어 침대에 눕혔어요. 바둥거리는 그의 손발을 단단히 묶더군요. 지시를 하는 사람은 "이번 일만 메이드하면 알지, 서둘러, 서둘러"라고 했어요. 나는 한발을 내디뎌 쇠창살을 짚고 안을 들여다봤습니다. 바닥에는 구정물이 그득했어요. 심한 악취가 감옥 안에 팽팽하더군요. 묘하게도 양복쟁이들의 구두는 흙탕물 속에서도 반짝였고, 침대에 눕혀진 사람의 배에선 피가 뿜어져 나오는 데도 와이셔츠의 깃은 하얗게 빛나더군요. 나는 창살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었는데 손바닥 길이만큼의 폭이라 넣을 수 없었습니다. 깨금발로 안을 보려 바둥거렸는데, 양복쟁이들은 쇠조끼를 입히고 배 깊숙이 관을 꽂더군요. 그들 사이로 팔뚝이 어른거리는데 털이 수북했어요. 순간 안도했죠. 남편이 아니라 곰이구나, 쓸개에 관이 꽂혀, 즙을 빨리는 곰일 거라고! 그런데 꿈틀대는 발에는 낯익은 남편의 구두가 보였어요. 나는 소스라쳐 그만하라고 악을 썼죠. 목울대는 움직이고 입을 크게 벌리는데 소리가 나오지 않았어요.
이런 얼개의 꿈을 아마 수백 번이나 꾸었을 겁니다. 어떤 날은 아들과 무릎 꿇은 채 검사에게 사정하고 어떤 날은 딸과 눈물을 흘리며 빌었죠. 남편을 풀어달라고. 손을 부여잡고 바짓단까지 붙잡습니다. 애원하다 얼굴을 들어 검사들을 쳐다보면 눈, 코, 입이 없었어요. 가면을 썼는지, 원래 그런 얼굴이었는지 꿈속에서도 궁금했죠. 자다 깨고 다시 잠들고 깨고 일어나면 베갯잇은 땀범벅인, 그런 날을 4년 가까이 보냈어요.
불행한 인연
내 남편, 이화영은 죄가 커요. 경기도의 평화부지사나 킨텍스의 대표이사를 할 때 쌍방울의 사외이사를 하면서 받았던 법인카드를 계속 쓴 건 분명 잘못입니다. 본인이 만든 동북아평화경제협회의 업무를 위해 썼다 해도 용납될 수 없습니다. 또 아들이 계약직이나 쌍방울그룹에 속한 기획사에서 잡지 업무를 담당한 점도, 이십 대의 취업난을 생각하면 송구한 마음입니다.
남편은 2004년 총선에서, 3선 의원인 이상수가 대선 자금 문제로 구속되자 그를 대신해 중랑구에서 출마해 국회의원이 되었죠. 남편은 2008년 임기가 끝났을 때 이상수에게 "옥에 계신 동안 지역구를 잘 관리해 출소하면 넘겨드리겠다"라고 한 약속을 지켰어요. 당시 주변의 만류가 컸습니다. 저도 남편에게 "노동부 장관도 했고 세 번이나 국회의원을 했으니 이제 후배를 키워달라고 이상수를 설득해 보라"라고 했으나 남편은 고개를 젓더군요.
결국, 2008년부터 경기도의 평화부지사가 되기까지 10년 동안 부평초처럼 살았습니다. 2010년의 강원도지사 민주당 경선에서, 2012년 동해·삼척 국회의원 선거에서 또 2016년 총선에서 거듭 고배를 마셨죠. 수입 없이 정치 활동을 하는 세월이 이어졌습니다. 정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죠. 그렇게 곤궁한 시절, 쌍방울과 연결되었습니다. 김성태 회장은 알려진 것처럼 2010년 쌍방울을 인수해, 정·관계의 끈을 만들려고 하던 터라 남편에게 사외이사 자리를 제안했죠. 한 달 300만 원 정도 급여를 받았습니다.
어느 순간 쌍방울이 "대북사업 추진을 내세워 주가 부양을 꾀"했으니 통일외교위 간사였고 뒤에 경기도청의 평화부지사가 된 남편이 쓸 만했겠죠. 쌍방울이 기업의 최소 원칙이라도 지킨 그룹이었다면, 남편이 사외이사를 하고 보수를 받은 게 흠은 아니었겠으나 돌아보니 불행한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직으로 복귀해서는 관계를 정리함이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평화부지사라는 현직에 올라가서도 쌍방울의 법인카드를 사용했으니, 원칙을 잃은 몸가짐이었습니다. 40년 가까이 함께 살아온 아내로서 부끄럽습니다. 다시 한번 사죄드리고, 이 부분은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고 지금 톡톡히 대가 치르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엄마의 생일날, 사라진 남편
남편이 구속된 날은 하필이면 친정엄마의 생신날이었어요. 함께 점심 식사하고 남편은 수원지검으로 들어갔죠. 바로 그날 영장이 청구되고 발부되었습니다. 담당 변호사가 놀라더군요. 1차 수사 결과를 검토하지도 않고 한두 차례 재소환하는 절차도 생략한 걸 보니 기획 수사의 냄새가 난다고 했어요. 조짐은 있었죠. 수원지검으로 출두하기 전, 남편이 대표이사인 킨텍스로 압수수색이 들어왔습니다. 압수수색을 앞두고 남편은 조선일보 기자의 전화를 받았어요. 대뜸 "쌍방울의 법인카드 받아 쓴 게 있죠?"라고 물었다고 해요. 남편은 당황했죠. 아무래도 조선일보이니 검찰이 정보를 흘렸다고 판단했고, 모종의 음모가 다가옴을 느꼈어요. 이미 변호사비 대납 사건으로 검찰이 쌍방울을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하던 터라 걱정이 컸습니다.
남편은 쌍방울의 법인카드를 썼다고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 및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2022년 9월 28일 구속됐습니다. 그렇게만 기소되었으면 죗값을 치르는 마음으로 징역 살고 새 출발할 수 있었겠죠. 웬걸 가시밭길의 서막이었어요. 검찰은 거듭 남편을 압박했죠. "쌍방울이 경기도가 북에 지급해야 할 돈을 대신 냈고 이를 남편이 이재명에게 보고했다"라는 진술을 원했어요. 검찰은 구속한 뒤 2주 후에 기소하고 1심 구속 기간이 만료되는 시점에 "김성태와 공모해 북에 자금을 보냈다"라고 외국환거래법위반으로 기소하고, 다시 6개월이 지나서 증거인멸교사혐의로 추가 기소했어요. 검찰은 1심 재판이 끝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 남편의 심신을 망가뜨렸습니다.
본인만 압박한 게 아닙니다. 나까지 소환했어요. "쌍방울로부터 받은 자금을 내 통장으로 빼돌렸다"라는 혐의를 걸더군요. 2019년에 첫째가 결혼하며 받은 축의금과 보험금 등이 내 계좌에 있었는데 모두 범죄 수익으로 몰아갔습니다. 여섯 차례나 내게 소환을 통보하고 세 번이나 집을 압수 수색했어요. 핸드폰은 두 번이나 빼앗기고. 나중에 참고인에서 피고인이 되었습니다. 또 친구이자 경기도청에서 함께 근무한 신명섭 평화협력국장을 구속했어요. 신명섭에게도 '북에 보낸 묘목 중 주목(朱木)이 이재명이 방북하려고 북의 통일전선부에 준 뇌물이다'라는 진술을 요구했어요. 신명섭은 거부하다 직권남용혐의로 구속되고 말았지요. 심지어 검찰은 변호인까지 압수수색하고 기소했습니다. 정말이지 남편을 향한 전방위 압박이었습니다(관련기사: 이화영의 친구 신명섭입니다, 조작기소 실체를 밝힙니다 https://omn.kr/2hx6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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