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탐사④] 숲으로 변한 아부오름
제주의 오름은 단순한 산이나 관광지가 아니다. 오름은 화산섬 제주의 지질을 보여주는 지형이자 초지와 숲, 곶자왈과 습지, 마을과 목장이 이어지는 생태의 거점이다. 또한 산담과 잣성, 신앙과 설화, 4·3의 기억, 군사유적 등이 겹겹이 쌓인 공간이기도 하다.
오름연구소 올(兀)과 함께 오름을 걷고 의미를 밝힌다. 탐사는 단순한 탐방을 넘어 오름의 지형·식생·기후·경관·역사·문화유산을 현장에서 확인하고 해석하는 과정이다. 익숙한 풍경 너머에 있는 변화와 훼손, 보전의 과제도 함께 살핀다.<편집자 주>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지난 11일 오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아부오름을 찾았다. 입구에서 10분도 되지 않아 능선에 올랐지만 오름 전체 모습은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전망대에서도 분화구와 능선은 곰솔에 가려져 있었다.
아부오름을 소개하는 옛 사진과 자료에는 완만한 능선과 초지로 둘러싸인 원형 분화구가 선명하게 나타난다. 지금 현장에서 만나는 풍경은 다르다. 능선과 사면 대부분을 곰솔림이 차지했고, 소와 말이 풀을 뜯던 목장의 흔적도 찾기 어렵다.
분화구 안쪽에 남은 경작지와 밭담의 흔적만이 사람이 오름을 이용해온 역사를 짐작하게 한다. 30~40년 전까지 메밀, 피 등을 심었던 곳으로 알려졌다. 분화구 내부 경작지를 원형으로 둘러싼 삼나무림은 방풍림 역할을 했으며 오름에서 방목하던 소가 밭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도 했다.
아부오름 사면을 덮은 곰솔림은 오래된 자연림이라기보다 방목과 초지 관리가 약해진 뒤 빠르게 확산한 숲이다.
곰솔이 초지로 번지기 시작하자 수년 전에 어린나무를 제거하려 했다. 그러나 관광객이 나무를 훼손한다며 민원을 제기하면서 작업을 중단했다. 이후 곰솔은 계속 퍼져 아부오름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는 것이 지역주민들의 증언이다.
◆목축과 사냥의 공간
곰솔숲에 가려진 아부오름을 이해하려면 지금의 관광지 풍경을 넘어 과거의 이용사를 살펴야 한다.
아부오름이 있는 송당 일대는 조선시대부터 제주 동부의 대표적인 목축공간이었다. 넓은 초지와 완만한 오름, 소와 말이 먹을 수 있는 풀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오름과 들판을 분리된 공간으로 보지 않았다. 오름 사면과 주변 평야를 하나의 방목지로 이용하고, 계절에 따라 가축을 이동시키며 초지를 관리했다.
아부오름은 사냥터이기도 했다. 제주목사 이익태가 남긴 '지영록(知瀛錄)'에는 압악(狎岳)에서 사냥한 기록이 나온다. 압악은 아부오름의 옛 표기다. 이익태 목사는 산 정상부에 친 장막에서 군사들이 사냥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해가 저물어 노루와 사슴을 평평한 들로 내몰자 기마군이 말을 달려 앞다투어 활로 쏘아 잡았으며, 숲과 골짜기를 뛰어넘었다. 말은 나는 듯하고 사람은 빠르니 사냥에 숙달됐음을 알 수 있었다'고 기록했다.
아부오름의 역사에서 피뿌리풀도 빼놓을 수 없다. 피뿌리풀은 햇볕이 잘 드는 건조한 초지에서 자라는 북방계 여러해살이풀이다. 몽골과 중국 북부, 시베리아 등의 초원에 널리 분포하지만 국내에서는 제주 동부 일부 오름에서 제한적으로 확인됐다.
유전적 연구에서는 제주 피뿌리풀이 몽골 중부와 내몽골 개체군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토대로 고려 말 몽골식 목장이 제주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피뿌리풀도 함께 유입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다만 씨앗이 말의 사료에 섞여 왔는지, 흙이나 물품에 붙어 이동했는지는 규명되지 않았다.
피뿌리풀과 목축의 관계도 주목할 만하다. 소와 말이 풀을 뜯으면 키 큰 풀이 줄고 햇빛이 지표면까지 들어온다. 독성이 있는 피뿌리풀은 말이 잘 먹지 않아 방목지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방목이 초지를 유지하고, 그 초지가 피뿌리풀의 서식공간을 제공한 셈이다.
그러나 방목이 줄고 곰솔과 관목이 퍼지면서 서식공간이던 초지가 사라졌다. 붉은빛을 띠는 뿌리와 함께 희귀하다고 알려지면서 채취와 남획도 개체 감소를 부추겼다. 한때 아부오름을 대표했던 피뿌리풀은 이제 현장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식물이 됐다.
이성권 오름연구소 올 대표는 "다양한 방법으로 피뿌리풀 인공증식을 시도했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연구실이나 실내보다는 야생 현지에 심어서 복원을 시도해보는 것도 고려해야한다"고 말했다.
◆문화경관 회복은 역사·생태·이용을 함께 살펴야
아부오름은 지금 제주 동부의 대표적인 관광 오름이다. 정상까지 오르는 길이 짧고 경사가 완만해 어린이와 노약자도 비교적 쉽게 찾는다. 둥글게 이어진 능선과 원형 분화구도 사진 촬영 장소로 인기를 끈다.
그러나 관광객이 기대하는 아부오름의 이미지와 실제 현장 사이에는 차이가 생겼다. 항공사진이나 과거 사진에서는 분화구 윤곽이 또렷하지만, 지상에서는 곰솔이 시야를 가린다. 능선을 걷는 탐방객도 오름의 화산지형을 한눈에 파악하기 어렵다.
최근 지역주민들은 오름 능선에 화훼용 수국을 심으며 새로운 볼거리를 만들고 있다. 계절 경관을 조성하고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지역의 노력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수국 식재와 아부오름 고유경관의 회복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수국은 관광 경관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지만 아부오름의 역사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요소는 초지와 목장, 분화구, 식물 등이다. 화훼식물 중심의 경관 조성이 확대되면 오름의 고유한 자연·문화경관보다 일반적인 관광지 이미지가 앞설 수 있다.
김영남 송당리 이장은 "나무가 많아 오름이 아니라 일반적인 숲길처럼 느껴지고, 과거의 모습에서 너무 많이 변했다는 탐방객 의견을 자주 듣고 있다"며 "필요한 경비가 지원된다면 마을 차원에서 지속적인 솎아베기와 경관 관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아부오름 관리의 핵심은 나무를 그대로 둘 것인지, 초지를 되살릴 것인지 양자택일하는 데 있지 않다. 오름이 지닌 역사와 생태, 현재의 이용을 함께 살펴 공간별 관리원칙을 세워야 할 것이다.
곰솔림 전체를 제거하는 방식은 생태적 충격과 경관 훼손을 일으킬 수 있다. 반대로 모든 곰솔을 보호하면 분화구 지형과 목축경관, 초지성 식물의 서식공간을 회복하기 어렵다.
우선 과거 사진과 항공영상, 식생조사 자료를 비교해 곰솔 확산 시기와 범위를 먼저 밝힐 필요가 있다. 이를 토대로 분화구 조망을 막는 구간, 과거 초지였던 사면, 피뿌리풀 등 초지성 식물의 복원이 가능한 지역을 선정할 수 있다.
조망점과 능선 일부에서 선택적으로 곰솔과 관목을 정비해 원형 분화구가 드러나도록 하고, 방목이 가능한 구역을 설정해 소나 말의 제한적·순환식 방목을 하거나 방목이 어렵다면 정기적인 풀베기와 잡목 제거를 통해 낮은 초지를 유지하는 방법이 있다.
또한 과거 피뿌리풀 자생지와 현재 생육환경을 조사한 뒤 관계기관과 협력해 증식·복원 가능성을 검토하는 방안도 있다.
◆아부오름 현황
제주도가 1997년 발간한 '제주의 오름'에 따르면 아부오름은 표고 301.4m, 비고 51m의 낮은 오름이다. 특히 화구 깊이는 78m로 비고 51m보다 27m가 더 깊다. 이 때문에 분화구 안쪽 사면은 바깥 사면보다 훨씬 가파르고 길게 형성됐다. 화구 바깥 둘레는 1.4㎞가량이고 전체 오름 둘레는 2㎞ 정도이다.
아부오름 면적은 제주의 오름에서 31만4926㎡이지만 오름연구소 올이 산정한 자료는 34만653㎡로 나타나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오름연구소 올의 자료를 바탕으로 하면 아부오름에는 모두 10필지가 편입돼 있다. 지목별로 보면 목장용지 30만2833㎡로 88.9%를 차지하고, 전이 1만9964㎡로 5.9%이다.
아부오름은 분화구내 밭을 제외하고는 송당리마을회 소유로 목장에서 임대해서 사용하고 있다. 농업기계화로 밭갈이소를 공동으로 방목할 필요가 사라졌고, 축사 중심의 집약축산이 이뤄지면서 7~8년 전부터는 오름에 소를 풀어놓지 않고 있다.
11일 답사에서 꽃이 핀 식물은 타래난초, 서양금혼초, 개엉겅퀴, 풀싸리, 개망초, 피막이, 수국, 솔나물, 산초나무, 꿀풀, 칡, 고삼, 인동덩굴, 참마 등을 확인했다.
곰솔림과 함께 머귀나무, 팽나무, 비목나무, 예덕나무, 올벚나무, 탱자나무, 보리수나무, 후박나무, 찔레꽃, 꾸지뽕나무, 장딸기, 아왜나무, 누리장나무 등이 자생하고 있으며 분화구 내부에는 고사리, 억새, 새, 자주방아풀, 도깨비가지 등이 우점하고, 신이대 군락이 분포하고 있다.
조류는 두견, 직박구리, 섬휘파람새, 뻐꾸기, 큰부리까마귀, 멧비둘기 등을 확인했다. 나비는 청띠제비나비, 굴뚝나비, 암끝검은표범나비, 흰줄표범나비, 남방노랑나비, 남방부전나비, 네발나비, 왕자팔랑나비, 큰줄흰나비, 흰점팔랑나비 등을 관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ijy788@news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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