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에 지쳐 '고요'가 필요하다면, 이 시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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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 <접시꽃 당신>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도종환 시인. 정치가이자 교육자, 지역과 문화 운동가로서의 복잡한 현실에서 돌아와 오롯이 시인으로서 펴낸 시집이다. 이번 시집 <고요로 가야겠다>에는 총 85편의 시를 '이월', '고요', '달팽이', '슬픔을 문지르다', '사랑해요', '당신의 동쪽', '손', '끝'까지 8개 부로 나눠 실었다. 이 시들을 모두 관통하는 시어라면 그의 마음이 가장 잘 담긴 '고요'가 아닐까 싶다.
제목에 이끌려 그가 말하는 '고요'는 어떤 것일까 짐작해 본다. 이 시집의 '고요로 가야겠다'는 의미는 온갖 들끓는 현실의 거센 바람과 번잡스러움을 이겨내고 마음의 평온을 이룬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처음부터 시끄럽지 않은 적막의 상태와는 다른 층위의 개념일 것이다. 비 온 뒤의 땅이 더욱 단단해지는 것처럼 시련을 겪고 난 후의 고요는 모든 소란을 포용한 더욱 깊고 따뜻한 느낌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상태의 '고요'가 절실한 나도, 내게 있어 '고요'란 어떤 의미인지 시를 읽으며 찾아보았다.
40년간의 교직을 퇴직하고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는 기간 동안 나 역시 마음의 동요를 겪으면서 고요한 상태가 되기를 갈망할 때가 많았다. 퇴직하면 그 모든 소란에서 벗어나 저절로 고요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퇴직 후에 새로 시작한 배움도 단순히 배움의 기쁨만 주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그 분야의 정상에 다다른 수많은 사람을 보며 생각 만큼 미치지 못하는 나의 역량에 좌절하고 또다시 마음이 욕심과 열등감으로 출렁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럴 때 이 시를 만나 반가운 마음으로 단숨에 읽게 되었다.
바람이 멈추었다
고요로 가야겠다(<고요로 가야겠다> 중)
표제인 시 <고요로 가야겠다>의 첫 행이다. 시는 이 두 행만으로도 단박에 내가 표현하고 싶은 모든 소망과 현재 마음의 상태를 온전히 다 이해 받는 느낌이었다. 열등감으로 소란스럽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굳이 애써서 위로하지 않는 것 같은데 위안이 되는 듯한 마법 같은 시였다.
고요, 어떻게 갈 수 있을까?
'나도 고요로 가고 싶다.'
급한 마음으로 시집을 펼치면 시인은 한 번 더 마음을 다독이는 것 같다. 마치 고요는 천천히 들어가야 만난다고 하는 것 같은 시집 구성 방식이다. 특히 각 부를 열어주는 8편의 시는 1∼5행으로 나누어 여러 쪽에 걸쳐 천천히 펼쳐지는 방식으로 제시된다. 평론가 노지영은 이를 "마치 전시관에서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전시장의 입구 벽에서 작품의 힌트를 보여주듯, 독자를 서두르지 않고 시의 세계로 데려가는 장치인 셈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한 페이지에 한 행씩 읽는 방식은 시를 필사하듯이 깊이 읽게 되는 효과가 있다.
예를 들어 첫 시 <이월> 전문을 만나려면 제목에서부터 한, 두 행을 징검다리 건너듯 음미하며 10쪽을 지나야 한다. 그러는 동안 독자는 한 행 한 행에 담긴 의미와 시어의 놀라움을 곱씹으며 그 의미를 확장하다가 자신의 내면에 그것이 들어오는 순간 비로소 한 편의 완전한 시에 도달하게 되는 방식이다.
<이월>
입춘이 지나갔다는 걸 나무들은 몸으로 안다///
한문을 배웠을 리 없는 산수유나무 어린것들이/ 솟을대문 옆에서 입춘을 읽는다///
이월이 좋은 것은/ 기다림이 나뭇가지를 출렁이게 하기 때문이다///
(///는 필자가 페이지를 구분하는 기호로 쓴 것임))
위 시에서 그는 '태백산맥 동쪽에는 허벅지까지 습설이 내려 쌓여/ 오르고 내리는 길 모두가 막혔다는데/ 길가의 나무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는 눈치다'라고 하며 '지나온 내 생애도 찬바람 몰아지는 날 많았는데 그때마다' 이월을 보며 위안이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고백은 몇몇 시에도 드러나 있어 현실에 지쳐 마음이 힘든 이에게 자연스럽게 공감을 가져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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