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월드컵 결승전에 불참한 이유

19일 오후 3시(현지시간), 미국 뉴저지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에서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결승전이 시작됐다. 국가의 이름과 국기, 국민의 감정이 한 경기 안에 모이는 날이었다. 그런 날의 귀빈석은 단순한 관람석이 아니다. 국가가 자신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무대다.
스페인 국왕과 정부 대표, 개최국 정상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은 그 자리에 없었다. 결승에 오른 두 나라 가운데 국가를 대표하는 자리를 비운 쪽은 아르헨티나였다.
밀레이가 국내에 남은 이유는 외교 일정도, 긴급한 국정 현안도 아니었다. 앞선 경기들과 같은 장소에서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방식으로 봐야 승리의 흐름이 깨지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는 스위스전에서 아르헨티나의 국영 에너지 기업인 YPF 로고가 붙은 점퍼를 벗자 아르헨티나가 실점했다며, 올리보스 관저에서 그 점퍼를 입고 결승을 보겠다고 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이처럼 이긴 경기의 복장과 자리, 행동을 되풀이하는 행운 의식을 '카발라'라고 부른다. 축구에서는 익숙하고 대체로 무해한 풍경이다. 다만 이번 카발라의 주인공은 평범한 관중이 아니라 대통령이었다. 믿음은 같아도, 그것을 가진 사람의 권력이 달라지면 문제도 달라지지 않을까.
점퍼는 패배를 막지 못했다
밀레이는 카발라를 지켰고, 아르헨티나는 졌다. 점퍼 때문에 진 것은 아닐 것이다. 점퍼를 더 단단히 여몄다고 이겼을 리도 없다. 결승의 결과는 선수들의 기량과 전술, 체력과 실수, 우연이 만들었다. 대통령의 복장은 그 인과관계 어디에도 없다.
상식적으로는 여기서 이야기가 끝난다. 그러나 미신은 실패 앞에서 쉽게 퇴장하지 않는다. 의식이 충분하지 않아서 실패했다고 할 수도 있고, 덕분에 다른 금기가 깨졌다고 할 수도 있다. 실패조차 믿음을 버려야 할 이유가 아니라, 새로운 설명을 덧붙일 기회가 된다.
좋은 결과가 나오면 자신의 행동 덕분이라고 믿고, 나쁜 결과가 나오면 예외의 이유를 찾는다. 이렇게 되면 믿음은 시험 받지 않는다. 결과가 무엇이든 살아남는다. 미신은 종종 실패를 반성의 계기가 아니라 새로운 설명의 재료로 삼는다.
점퍼 한 벌만으로 밀레이의 국정 전체를 재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것을 완전히 고립된 축구 해프닝으로 치부하기도 어렵다. 그는 2025년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가상자산 '리브라'를 자신의 계정에서 직접 홍보했다. 대통령의 게시물 뒤 가격이 폭등했다 곧 폭락했고, 투자자 피해와 책임 논란이 뒤따랐다.
점퍼와 가상자산은 같은 일이 아니다. 하나는 축구의 징크스이고 다른 하나는 금융상품 홍보다. 그러나 공통점은 있다. 개인적 확신이 충분한 검토를 거치지 않은 채 대통령의 권위와 결합했다는 점이다. 권력자의 확신은 혼자만의 착각으로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의 돈과 일정, 공적 판단을 움직인다.
그러므로 물어야 할 것은 카발라가 맞았느냐 틀렸느냐가 아니다. 검증되지 않은 믿음과 검토되지 않은 확신이 대통령의 선택을 움직일 때, 그것을 언제까지 개인의 자유라고만 부를 수 있느냐다.
축구의 징크스와 대통령의 판단은 다르다
축구 선수나 팬들은 이긴 날과 같은 자리에 앉고, 같은 옷을 입고, 유니폼을 빨지 않거나 같은 음식을 먹기도 한다. 이런 카발라는 승패의 긴장을 견디고 함께 웃을 거리를 만드는 축구 문화다. 그것을 무지나 야만으로 몰아갈 이유는 없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믿음의 내용이 아니라 그것을 가진 사람의 권력이다. 팬은 자신의 자리와 복장만 정한다. 대통령의 선택은 참모와 경호, 의전과 외교적 상징을 함께 움직인다. 보통 사람의 미신은 자신을 구속하지만, 권력자의 미신은 타인의 일정과 국가의 판단까지 구속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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