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이는 주가에 피 마르는데…정작 반도체 시장은 '활황'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급락과 급등을 반복하고 있다. 인공지능(AI) 과잉투자(overinvestment) 우려가 투자자들 사이에 확산하며 주가가 출렁이고 있지만, 정작 실제 반도체 시장에서는 정반대의 신호가 일관되게 나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기업들이 생산시설을 공격적으로 늘려도 급증하는 수요를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의 초호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주가 아무리 출렁여도…반도체는 당분간 질주한다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이달 들어서만 냉온탕을 오갔다. 이른바 '가성비 AI'로 평가 받는 중국의 키미 K3 등장으로 지난 20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삼성전자 주가는 4.31% 떨어졌고, SK하이닉스는 4.23% 하락했지만, 곧바로 다음날(21일) 6.56%, 4.14% 각각 상승했다.
지난 2일에는 메타가 데이터센터의 잔여 컴퓨팅 자원을 판매한다는 소식에 삼성전자는 9% 이상, SK하이닉스는 14.57% 폭락했지만, 바로 다음날 각각 10% 안팎으로 반등했다. 그간 글로벌 주요 빅테크들이 집중해 온 AI 투자가 과했던 것 아니냐는 시장 우려가 두 기업의 주가 변동성을 키운 주요 요소 가운데 하나로 지목됐다.
그러나 반도체 업계가 체감하는 시장 상황은 이처럼 출렁이는 주가 흐름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AI의 핵심 부품인 반도체가 없어서 못 팔 정도의 품귀 현상이 우려 사항이라는 것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최근 제주도 서귀포시 제주신라호텔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반도체 수요가 올해보다 최소 50~60%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최 회장은 "내년에 AI 메모리를 올해보다 최소 60~100%쯤 더 쓰겠다는 고객사들의 요청이 있다"며 "AI 쪽에서 쓰는 반도체가 전체 반도체 수요의 거의 절반 이상이기 때문에 결국 전체 수요가 최소 50~60%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메모리 공급 증가폭은 글로벌 수요에 크게 못 미칠 것으로 진단했다. 최 회장은 "어느 반도체 회사도 내년에 공급량을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올해보다 내년에 수급 격차가 훨씬 더 벌어질 수밖에 없고, 저도 엄청난 로비와 압력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생산시설을 빠르게 늘려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최 회장은 "지을 수 있는 모든 곳에 지어보려는 것이 지금 상황"이라며 "전 세계에서 어디가 가장 좋고, 빠르고 크게 지을 수 있는지 우선순위를 가려 빨리 짓는 게 한국 반도체 산업의 생명줄처럼 됐다"고 전했다.
AI 기술 고도화와 맞물린 수요 폭증으로 반도체 산업의 구조적 성장기가 열렸다는 게 업계 안팎의 분석이다. PC나 휴대전화 중심의 반도체 업황은 주기적으로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사이클이 비교적 명확했는데, 본격적인 AI 시대가 열리면서 사이클 자체가 변했다는 것이다. 최 회장 역시 지난 10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구조적인 변화는 이미 일어났고 과거와 같은 사이클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해졌다"고 설명했다.
최근 역대 2분기 최대 실적을 갈아치운 대만 TSMC 웬델 황 최고재무책임자(CFO) 또한 지난 20일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고객들의 강한 수요, 다년간의 구조적 수요를 계속 보고 있다"며 미국 애리조나 공장 투자 규모를 2650억달러(약 397조 5000억원)로 늘린다고 밝혔다.
"반도체 추가생산 빨라도 2028~2029년쯤 가능"시장조사업체가 내놓은 수치도 이들의 설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지난 9일 서버용 D램 계약가격이 올해 3분기에도 직전 분기보다 13~18%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일반 D램 계약가격도 13~18%, 낸드플래시 가격은 10~15%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공급이 수요에 못 미치면서 메모리 기업들이 분기 중 판매가격을 추가로 높일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시장 규모 전망도 상향되고 있다. 미국 정보 기술 자문 회사 가트너가 지난달 발표한 전망에 따르면 올해 세계 반도체 매출은 지난해보다 92.2% 증가한 1조 56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메모리 매출만 8300억 달러를 넘어 전체 반도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관측됐다.
반도체 장비업계의 투자 전망도 비슷하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는 지난 14일 올해 웨이퍼 팹 장비 매출이 지난해보다 23.1% 늘어난 1439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고대역폭메모리(HBM)용 D램과 첨단 시스템반도체 투자가 성장을 이끌 것으로 분석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AI의 등장으로 인해 반도체 수요가 폭증했지만, 반도체 공급을 늘리는 일은 금방 되는 것이 아니"라며 "설비를 투자하고 생산에 이르기까지 빨라도 2028~2029년쯤 가능한 일이다. 그때까지는 기업과 사람들이 AI를 쓰지 않으면 모를까 부족 현상은 계속될 전망이 우세하기 때문에 반도체 시장은 호황일 것"으로 예상했다.
상명대 이종환 반도체학과 교수도 "키미K3 등 중국의 AI 기술 역시 궁극적으로는 반도체 업계에 활력을 불어넣게 될 것"이라며 "AI 시장이 활발해질수록 결국 반도체 시장은 덩달아 달아오를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도 시장의 불안이 오래가진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지난 19일 언론 인터뷰에서 최근 제기된 반도체 고점론을 "시장의 지나친 우려에 기반한 일시적 회의론"으로 평가했다. 그는 "AI 혁명은 새로운 문명을 만드는 초기 단계이며, 반도체 수요는 무궁무진하게 확장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완전자율주행과 범용인공지능(AGI), 피지컬 AI, 우주 개발 등으로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근의 주가 조정도 산업 성장세가 꺾였다기보다 단기 급등에 따른 숨 고르기에 가깝다고 판단했다.
증권가에서는 실제 주문량과 공급량 사이의 격차도 주목하고 있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도 로이터에서 "D램 공급은 현재 수요 중 75%에서 80% 수준에 그치는 중"이라며 "올해 하반기에 공급 부족이 더 심해질 전망"이라고 밝혔다. 또 실수요를 웃도는 주문을 제외해도 공급량은 수요의 약 70%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럼에도 호황 뒤에 숨은 변수 셋다만 반도체 업계의 성장 속도가 다소 둔화될 수 있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크게 치솟은 메모리 가격이 소비 수요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업계도 우려하고 있다.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이 이미 PC와 스마트폰 업체들이 감당할 수 없는 한계점에 다다르면서 제품의 생산량을 줄이거나 메모리 탑재량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가트너는 메모리와 저장장치 가격 상승으로 올해 세계 PC 출하량이 지난해보다 10.4%, 스마트폰 출하량은 8.4%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메모리 원가 상승이 PC 가격을 17%, 스마트폰 가격을 13% 끌어올릴 수 있다고 봤다.
빅테크의 투자 확대 속도가 둔화할 가능성도 변수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는 주요 빅테크의 설비투자(CAPEX) 증가율이 올해 76%에서 내년 25%, 2028년 6%로 낮아질 것으로 추산했다. 투자액 자체는 늘어나더라도 증가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게 떨어지면 반도체 기업의 실적에 반영된 높은 성장 기대를 충족하지 못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대규모 투자금이 유입된 생산시설들이 한꺼번에 가동되는 시점도 업계의 주목 포인트로 꼽힌다. 가트너는 지난 4월 세계 반도체 설비투자가 올해 16.4%, 내년 11.2% 늘어난 뒤 2028년에는 순환 조정 국면에 들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건설 중인 공장들이 본격적으로 생산을 시작하고 AI 투자 증가세까지 둔화하면 공급 부족이 빠르게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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