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이 착각하는 얼그레이 원산지

젖은 흙길 위에 연보라 꽃송이가 돌돌 말려 가지런히 떨어져 있었습니다. 장맛비의 무게를 고스란히 받아내다, 스스로 꽃잎을 또르르 말아 쥐고 단정하게 내려앉은 무궁화였죠. 단 한 그루였어요. 소나무와 상수리 나무, 은행나무, 밤나무 사이, 그 연보랏빛 낙화 앞에서 저는 빗방울을 머금고 활짝 핀 무궁화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7일, 벌써 소서(小暑)입니다. 24절기 가운데 열한 번째, '작은 더위'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은 본격적인 무더위의 서막이죠. 하지가 지나 낮이 조금씩 짧아지기 시작하는데도 더위는 오히려 이제부터 몸을 일으키니, 계절이란 참 짓궂은 데가 있습니다.
옛사람들에게 이 무렵은 꽤 분주한 때였습니다. 모내기를 막 끝낸 논에서는 어린 벼가 뿌리를 내리느라 안간힘을 쓰고, 갓 거둬들인 밀과 보리로는 국수를 뽑고 수제비를 끓였습니다. 밀가루 음식이 가장 맛있는 때가 바로 이 무렵이라, 소서(小暑)의 밥상엔 늘 뽀얀 밀 냄새가 감돌았다고 하죠.
그리고 장마가 잠시 숨을 고르며 해가 나는 날이면, 집집마다 장롱 깊숙이 넣어두었던 명주옷과 눅눅해진 서책을 꺼내어 마당 가득 널어두었습니다. 볕과 바람을 쐬어 습기와 곰팡이를 쫓아내는 이 풍습을 '거풍(擧風)'이라 불렀습니다. 마당에 책장이 팔랑팔랑 넘어가고 명주옷 소매가 바람에 부풀어 오르는 풍경이라니, 상상만으로도 어쩐지 마음이 보송보송해지는 기분이 드네요.
늦장마에 찾아온 소서
하지만 올해의 소서(小暑)는 사정이 다릅니다. 늦장마가 찾아와, 우리는 지금 비구름의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있거든요. 책을 말리기는커녕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공기 중의 무거운 습기가 피부에 끈적하게 들러붙습니다.
방바닥은 눅눅하고, 산 속을 걷는 것인지 물 속을 걷는 것인지 모를 기분에 힘들더군요. 창밖은 폭우였다가, 해가 났다가 회색이 됐다가 변화무쌍합니다. 빨래는 쉬이 마르지 않고, 습도계 바늘은 80을 넘나들며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요 며칠, 매일같이 산에 오릅니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장마철의 숲은 맑은 날과는 전혀 다른, 대단히 농밀하고 육감적인 생명력을 뿜어냅니다. 발밑에서 질척이는 진흙의 감촉, 넓은 잎사귀 위로 후드득 떨어지는 굵은 빗방울 소리, 그리고 축축하게 젖은 짙은 녹음의 냄새.
평소엔 물이 말라 있던 골짜기마다 콸콸 물소리가 살아나고, 바위마다 이끼가 벨벳처럼 도톰하게 부풀어 오릅니다. 새들마저 숨죽인 빗속의 숲에서는 오직 물의 소리와 흙의 냄새만이 오감을 가득 채우죠. 나뭇잎을 쉼 없이 두드리는 빗소리에 귀를 맡기고 걷다 보면, 도시에서 짊어지고 온 눅눅한 생각들이 하나둘 씻겨 내려가는 것을 느낍니다.
비가 온다면 맞을 각오로 산에 오르는데 늘 하늘이 도와 나뭇잎이 머금은 물을 바람이 불어 후드득 떨구는 것 말고는 아직 큰 비를 만나지는 못 했습니다. 문득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라는 이순신 장군의 말씀을 떠올리며 혼자 껄껄 웃었어요. 주변에 아무도 없어 다행이라 생각하자마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청설모와 눈이 마주지며 괜히 머쓱해집니다.
꿉꿉함을 단번에 날려줄 차, 얼그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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