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쉬는 날 쇼핑앱 켰다…전통시장 빗겨간 규제의 역설[기울어진 유통시장②]
[서울=뉴시스]동효정 기자 = 대형마트 의무휴업 제도가 시행된 지 10여년이 지나면서 소비자들의 장보기 방식은 크게 달라졌다. 대형마트가 문을 닫는 날 소비자들이 찾는 곳은 전통시장보다 쿠팡과 네이버 등 온라인 쇼핑 플랫폼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규제가 결과적으로 온라인 유통시장 성장에 힘을 실어주는 '규제의 역설'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새벽배송과 당일배송이 일상화됐지만 대형마트는 의무휴업과 배송까지 제한 받는 가운데 홈플러스가 회생절차 폐지 결정으로 파산 위기에 놓이면서 변화한 유통 환경에 맞춰 규제의 실효성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1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대형마트 의무휴업은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통해 도입됐다.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은 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한 월 2회 공휴일에 의무적으로 영업을 중단해야 한다. 법은 공휴일 중 의무휴업일을 지정하도록 하되, 이해당사자 간 합의를 거쳐 평일로 변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당시 정책의 핵심은 대형마트가 쉬는 날 소비를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으로 유도해 지역 상권을 활성화하는 것이었다. 대형마트의 과도한 시장 지배력을 완화하고 소상공인의 생존 기반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지난 10여년 동안 소비 환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온라인 장보기가 일상화됐고 새벽배송과 당일배송, 즉시배송이 보편화되면서 소비자는 굳이 오프라인 매장을 찾지 않아도 필요한 상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됐다.
대형마트가 문을 닫는 날에도 쿠팡과 네이버, 컬리 등 전자상거래 플랫폼은 24시간 주문을 받는다. 반면 대형마트는 오프라인 영업뿐 아니라 점포를 활용한 온라인 주문 처리와 배송도 사실상 중단된다. 점포에서 온라인 주문 상품을 집품(피킹)해 배송하는 서비스 역시 의무휴업일에는 운영이 어렵다.
온·오프라인 경계가 허물어진 유통 환경에서도 오프라인 유통업체만 규제를 적용 받는 셈이다.
실제 의무휴업이 온라인 소비를 키웠다는 분석은 제도 도입 초기부터 제기됐다.
정진욱 연세대학교 경제학 교수는 2012년 경제분석에서 대형마트 영업제한으로 대형마트 소비가 8.77% 감소하는 반면 당시 약 29조원 규모였던 온라인 유통시장에 대한 대형마트의 경쟁력은 약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납품업체들의 연간 매출 감소 규모는 2조2464억원, 이 가운데 농어민과 중소 협력업체의 피해는 약 1조152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한국중소기업학회가 2018년 발표한 '상권 내 공생(상생협력)을 통한 골목상권 활성화 방안' 연구에서는 일요일 의무휴업일 온라인 소비가 상권별로 7~3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대형마트의 집객효과가 사라지면서 주변 소상공인 매출도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최근 연구들은 대형마트를 단순한 경쟁자가 아니라 주변 상권으로 소비자를 유입시키는 '집객시설'로 바라보고 있다.
한국유통학회는 2020년 발표한 '유통규제 10년의 평가 및 대·중소유통 상생방안' 연구에서 대형마트 1개 점포가 폐점하면 반경 1㎞ 이내 주변 상권 매출은 4.82%, 반경 1~2㎞는 2.86% 감소한다고 분석했다. 대형마트 한 곳이 사라질 경우 대형마트와 주변 상권을 포함해 총 1374명의 고용이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2023년 한국유통학회와 대한상공회의소 공동 연구도 의무휴업이 온라인과 식자재마트 성장으로 이어지는 '풍선효과'를 낳고 소비자 후생은 오히려 저하시켰다고 평가했다. 서울신용보증재단 역시 대규모점포와 준대규모점포의 출점이 주변 상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2024년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역시 대형마트 폐점 이후 반경 2㎞ 내 골목상권의 유동인구와 매출이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의무휴업 제도의 정책 전환 필요성을 제기했다.
KDI는 지난 5월 발표한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이 시사하는 유통정책의 전환 방향' 보고서에서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이 동일한 소비자를 두고 경쟁하는 구조가 아니라며 소비자 구매 행태 변화에 맞춰 제도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한 대구와 부산, 서울 일부 자치구 등에서는 대형마트 매출이 증가했을 뿐 아니라 복합쇼핑시설 내 입점업체와 인접 상권의 매출도 함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전통시장과 농축수산 업종에서는 일관된 매출 감소는 확인되지 않았다.
KDI는 대형마트의 집객효과를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으로 연결하는 공동 할인행사와 지역상품 연계 마케팅 등을 확대하고, 소비자 후생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의무휴업 제도의 완화 여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내 2위 대형마트인 홈플러스는 최근 법원의 회생절차 폐지 결정으로 사실상 청산 수순에 들어갔다.
업계에서는 홈플러스의 경우 높은 차입 부담과 투자 부족 등 개별 경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보면서도 소비 침체와 온라인 중심의 시장 재편, 장기간 이어진 규제 등이 오프라인 유통업계 전반의 경쟁력을 약화시킨 배경이라는 점에는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변화한 시장 환경에 맞춰 제도도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의무휴업을 전면 폐지하는 방안뿐 아니라 평일 전환, 지방자치단체의 자율 결정권 확대, 점포를 활용한 온라인 배송 업무 예외 허용 등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다만 규제 완화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시민단체와 전통시장 상인들은 의무휴업이 완화될 경우 골목상권 침해가 심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노동계 역시 영업시간 확대와 새벽배송 허용 등이 휴일·야간 노동을 늘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2012년에는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의 경쟁 구도가 있었다고 판단했으나 지금은 누가봐도 온라인 플랫폼이 가장 강력한 유통공룡이 됐다"며 "대형마트가 쉬는 날 소비가 전통시장보다 온라인 쇼핑앱으로 이동하는 현실을 반영해 제도의 실효성을 냉정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vivid@news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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