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가지 호호 불어가며 조물조물 무치면, 슴슴한 건강의 맛
남편이 연이틀 동안 회사 일이 바빠서 집에 점심을 먹으러 오지 못했다. 오전 근무를 하고 회사 근처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오후 출근을 했다. 그러다 보니 며칠간 따로 반찬을 하지 않았다. 오늘 마침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뭐라도 준비를 하려고 냉장고 문을 열어보았다. 며칠 전 가지 반찬이 먹고 싶다는 남편의 말이 생각나 사다 둔 오이와 가지가 눈에 들어와 봉지째 꺼냈다.
푹푹 찌는 찜통 같은 더위가 계속 이어질 때 빠지지 않고 준비하는 것이 있다. 바로 오이와 양파 그리고 비트다. 먹기 좋게 잘라서 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간식 대용으로 먹으면 더위에 지친 몸이 회복되는 느낌이 든다. 이번에는 오이를 아삭하게 무쳐 반찬으로 올릴 작정이었다. 가지도 무침으로 만들기로 했다. 원래는 가지 냉국을 만들려고 하다가 아직 해초 냉국이 남아 있어 계획을 바꿨다.
어린 시절, 우리 집 앞에는 작은 텃밭이 있었다. 가지, 고추, 오이 등 채소들이 메마르지 않도록 물을 뿌려주고 거름을 주는 일은 주로 아버지가 하셨다. 아버지는 열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줄기가 옆으로 꺾이지 않도록 지지대를 깊숙이 찔러 넣고 끈으로 조심스럽게 매듭을 지어주셨다. 그 팽팽한 끈은 식물의 생명을 지탱하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여름이면 그 텃밭에서 딴 오이나 가지로 반찬을 만들었다. 아침 일찍 들로 나가 뉘엿뉘엿 해가 질 때야 돌아오시는 부모님을 위해, 육 남매의 막내딸이었던 나는 아홉 살 때부터 집안 살림을 도맡았다. 개울가 빨래터로 향하고 엄마 어깨너머로 배운 솜씨로 조막손을 놀려 반찬을 만들었다. 고단한 몸으로 돌아온 엄마는 막내딸이 차려놓은 밥상을 마주하면 피로가 다 가신 듯 얼굴이 환해지셨다.
엄마는 주로 가지를 밥 위에 쪄서 손으로 쭉쭉 찢어 무쳐주시거나 가지 냉국을 만들어 주셨다. 냉국에 띄울 얼음을 사러 두 살 터울인 막내 오빠와 주황색 바가지를 들고 얼음집으로 달리던 기억이 선하다. 아버지가 얼음에 칼을 대고 망치로 칼자루를 통통 두드리면, 단단한 얼음이 잘게 부서졌다. 마당 들마루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모깃불을 피워가며 그 시원한 냉국을 퍼먹던 기억은 아직도 내 가슴속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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