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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성향
느리고 허약해서 인간적인 연극의 매력, 대학로에서 시작합니다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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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사유하고, 다시 그 깊이가 자리 잡을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싶습니다."
지난 26일 종로구 대학로극장 쿼드 무대에 선 송형종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의 말은 이날 기자간담회의 성격을 가장 또렷하게 설명했다. 이 자리는 단순히 대학로극장 쿼드의 올해 하반기 공연 라인업을 발표하는 행사가 아니었다. 한 극장이 왜 다시 연극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대학로가 왜 지금 연극의 본질을 물어야 하는지, 그리고 기술이 인간의 영역을 빠르게 대체하는 시대에 연극은 무엇으로 남을 수 있는지를 묻는 자리였다.
그는 먼저 "대학로가 요즘 어렵다"는 말로 서문을 열었다. 그러나 이번 프로젝트가 단지 대학로의 어려움 때문에 기획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코로나 이후 연극과 공연예술계는 과연 제대로 가고 있는가. 재개관 이후 대학로극장 쿼드는 현장과 시민, 그리고 연극을 사랑하는 관객에게 충분한 역할을 해왔는가. 그는 그 질문을 고민해왔다고 밝혔다.
"극장이 리빌딩되고 재개관하면서 그 목적을 열심히 해왔지만, 현장에, 시민들에게, 마니아 관객층에게 그 역할을 충분히 다하지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고민 끝에 쿼드는 다시 연극 자체로 돌아갔다. 그는 지난해 가을부터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한국 연극의 중요한 길을 걸어온 다섯 명의 연출가에게 참여를 요청했다. 그는 요청을 "연극 운동 차원의 부탁"이었다고 표현했다.
이날 무대 위 스크린에는 다섯 명의 얼굴이 크게 걸려 있었다. 김아라, 김광보, 김우옥, 이성열, 한태숙. 이름만으로도 한국 연극의 한 시대를 거쳐온 상징적인 예술가들이다. 그 아래 긴 테이블 앞에는 굵은 글씨로 "쿼드, 연극의 질문들: 진화하는 텍스트"라고 적혀 있었다.
오는 9월부터 12월까지 대학로극장 쿼드는 이 다섯 연출가와 함께 시즌 프로젝트 '쿼드, 연극의 질문들: 진화하는 텍스트'를 선보인다. 김아라의 , 김광보의 <옥상 밭 고추는 왜 - Ethics & Moral>, 김우옥의 <혁명의 춤>, 이성열의 <화염>, 한태숙의 <서안화차>가 차례로 무대에 오른다.
김아라, 소리와 분노로 다시 만나는 맥베스
첫 번째로 소개된 작품은 김아라 연출의 <더 사운그 오브 맥베스(The sound of Macbeth)>(9월 8일~13일)이다. 김아라는 이번 프로젝트를 제안받으며 두 가지 미션을 받았다. 하나는 블랙박스 극장인 쿼드의 특성을 살리는 것, 다른 하나는 자신의 대표작 중 다시 만들고 싶은 작품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그는 2000년대 초 죽산국제예술제 야외극장에서 선보였던 <맥베스> 작업을 떠올렸다. 당시에는 500평 규모의 야외극장에 두 명의 맥베스를 등장시켰다. 그런데 2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는 그 작품을 전혀 다른 공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시 해보고 싶어졌다. 야외의 거대한 공간이 아니라, 관객과 배우가 거의 맞닿는 블랙박스 안에서다.
김아라가 붙든 것은 <맥베스> 5막 5장에 나오는 독백이었다. "소리와 분노로 가득 찼으나 모두 부질없는 헛소리일 뿐이다." 그는 이 한 문장 안에 셰익스피어 비극의 본질이 들어 있다고 말했다. 인간의 본능, 파멸, 전쟁, 희생, 정복, 학살의 역사가 그 안에서 한꺼번에 울린다는 뜻이었다. 이번 무대는 객석과 무대가 나뉘지 않는다. 관객은 서 있거나 앉거나 기대거나 누울 수도 있다. 배우와 관객이 같은 평면 위에 놓인다. 말의 잔치를 넘어, 인간의 극단적 심리를 음악화하고 소리화하는 작업이다.
김광보, 고추 한 줌에서 드러나는 한국 사회의 민낯
김광보 연출은 <옥상 밭 고추는 왜 - Ethics & Moral>(9월 18일~10월 4일)을 들고 나왔다. 장우재 작가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20년 된 변두리 낡은 빌라 옥상 텃밭에서 벌어진 고추 도난 사건으로 시작된다. 사건은 작다. 고추가 없어졌다. 그러나 연극은 그 사소한 사건을 따라가며 정의와 위선, 개인의 신념과 사회적 합의, 재개발과 세대 갈등, 욕망과 독선을 무대 위로 끌어올린다.
김광보는 이 작품을 "사소한 이웃 간의 다툼을 통해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들여다보는 날카로운 사회 고발극"이라고 소개했다. 한 청년이 정의를 바로잡겠다며 시위를 벌이고, 그 일은 마을 전체를 걷잡을 수 없는 갈등 속으로 밀어 넣는다. 정의를 외치는 개인의 신념이 어떻게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는지 묻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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