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수괴'라고? 의대에서 제적당한 뒤에 벌어진 일
1990년 1월과 2월, 전국 곳곳에서 김일성·김정일을 찬양하는 유인물이 살포됐다. 그해 2월 23일 자 <조선일보>는 "유인물들은 대부분 남도주체사상연구회와 반제청년동맹 등 2개 조직의 명의"라며 "마창 지역과 부산·울산 등 경남 지방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고 있으나, 반제청년동맹 명의의 유인물은 경남 이외에도 전국에서 비교적 광범위하게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이 선전전을 통해 상대적으로 더 부각된 쪽은 김일성이 아니라 김정일이다. 김정일의 경우에는 생일 축하 플래카드까지 게시됐다. 이 플래카드는 김정일 생일 다음 날 마산 시내 번화가에 등장했다.
위 신문의 그달 21일 자에 따르면, 17일 저녁 마산 고속버스터미널 인근 3층 건물에 "경축 주체사상 위업의 위대한 계승자 김정일 동지 48돌"이라는 길이 4.52미터, 폭 0.52미터의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 이 건물은 마산동부경찰서 양덕파출소와 약 50미터 거리였다. 위험을 무릅쓰고 이런 일을 벌인 것은 선전전 참여자들이 김정일 홍보에 좀 더 신경을 썼음을 보여준다.
서른두 살 때인 1974년에 북한 내부적으로 후계자 지위를 인정받고 1980년에 정치국 상무위원이 된 김정일이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된 것은 1990년 5월이다. 김정일의 2인자 지위를 명실상부하게 공고히 하는 이 일이 있기 3개월 전, 남한에서 김일성보다 김정일을 부각시키는 선전활동이 있었던 것이다.
이때의 유인물은 학생운동권 유인물과 달랐다. 위 <조선일보>는 "경찰은 이들 유인물들이 기존의 주사파 계열 운동권 학생이나 좌경 지하운동단체들의 유인물과 용어나 문체 등에서 뚜렷이 구별되며, 노골적으로 북한을 찬양하는 내용 일색인 점을 중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길거리·주택가·술집·지하철역·기업체·공중전화박스·대학가 등 그야말로 전방위적으로 살포됐다. 자금력은 물론이고 전국적인 조직력과 시스템이 필요한 이 유인물 살포는 운동권 학생들이 벌였다고 보기는 힘든 일이었다. 이 시기 운동권 학생들에게 그만한 역량이 확보됐다면, 그들은 김일성·김정일 찬양보다는 전두환·노태우 처벌을 촉구하는 선전 활동에 좀더 신경을 썼을 것이다.
당시 언론보도에도 나타난 것처럼, 경찰 역시 학생운동권이 뿌린 유인물로 보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판단은 수사 과정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공안기관은 별 고민 없이 학생운동권 출신을 용의자로 지목했다. 20대 후반의 경상대학교 의과대학 제적생(민주화운동 했다는 이유로 유급·제적)인 진홍근은 이런 수사 방식의 피해자였다.
누명 씌우고 80여일간 불법 구금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2025년 상반기 조사보고서> 제34권 진홍근 편은 "진주경찰서는 1990. 1.~2.경 경상대학교 학생회관과 진주 지역에서 남도주체사상연구회 명의의 김일성 찬양 유인물이 발견되자, 과거 학생운동을 주도한 적이 있던 신청인을 용의자로 지목하고 수사를 시작하였다"고 기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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