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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가 파 놓은 거대한 덫, 하마터면 속을 뻔했네

오마이뉴스
<호프>가 파 놓은 거대한 덫, 하마터면 속을 뻔했네

ONP 요약

유명한 감독 나홍진의 새 영화 '호프'가 개봉 후 단 5일 만에 관객 200만 명을 넘기며 큰 성공을 거뒀다. 올해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중에서 이렇게 빨리 기록을 낸 것은 처음이라서 화제가 되고 있다.

진보 성향:현실 비판 메타포 — 비무장지대와 간첍 신고 배경으로 낯선 것을 위협으로 보는 사회의 편견과 두려움을 비판한다.

중도 성향:기술과 흥행의 객관 보도 — VFX·미장센·긴장과 유머의 조합, 200만 관객 수치 등을 중심으로 영화의 다양한 관람 포인트를 객관적으로 소개한다.

보수 성향:세계 명성의 거장 귀환 —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과 '추격자' '황해' '곡성' 등 과거 성공작을 강조하며 세계 수준 감독의 귀환으로 평가한다.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호포항 마을의 도로변에 입간판 하나가 서 있다. 간첩을 보면 신고하라는 문구. 카메라는 그것을 특별히 강조하지 않는다. 한 번, 또 한 번, 마을을 드나드는 인물들 뒤로 무심히 스쳐 지나갈 뿐이다. 시대를 일러주는 소품이려니, 관객도 무심히 지나친다.

입간판이 시키는 일은 단순하다. 낯선 것을 보면 무엇인지 확인하기 전에 먼저 위협으로 분류하는 것. 호포항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그렇게 보는 법을 배워 왔다. 외계 괴물이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영화가 시작되고 한 시간 동안 〈호프〉는 외계인이 나오는 영화처럼 굴지 않는다. 외진 바닷가 마을 호포항. 출장소장 범석(황정민 분)은 걸쭉한 욕을 입에 달고 산다. 청년들이 죽은 소를 두고 호랑이 짓이라 하고, 마을에 비상이 걸리고,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진다. 전형적인 한국형 소동극의 리듬이다. 나홍진은 156분의 첫 3분의 1을 이 능청스러운 코미디에 쓴다. 그사이 어디선가 번진 산불이 마을을 바깥세계로부터 끊어놓는다. 호포항은 바깥과 끊긴 채 각자도생의 처지에 놓인다.

그러다 무전이 오간다. 범석이 예비군을 소집하고 무기를 반출하라 지시한다. 답이 돌아온다. 여덟 명밖에 없습니다. 웃기라고 만든 대사인데, 실제로 웃겼다. 이 외딴 마을의 총동원 병력이 여덟이라니. 그런데 그 여덟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화면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은 호랑이를 본 적이 없다

이 소동에는 웃음에 묻혀 지나가기 쉬운 사실이 하나 있다. 그들은 호랑이를 본 적이 없다. 그들이 본 것은 죽은 소다. 찢긴 사체와 깊은 상처. 한 청년이 이 정도 상처라면 호랑이라고 했고 나머지는 그 말을 거들었다. 목격이 아니라 추측이었고 추측의 근거는 마을 아저씨의 전언이었다. 결과만 눈앞에 있었고, 원인의 자리는 비어 있었으며, 그 빈칸에 '호랑이'라는 이름이 들어왔다.

그런데 하필 호랑이라니. 한반도 남쪽의 호랑이는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마지막 한 마리가 사살된 뒤 자취를 감췄다. 절멸시킨 것은 일제의 해수구제사업(1915~1942)이다. 짐승에게 '해수(害獸)', 곧 해로운 짐승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제거한 제도였다. 환경부가 남한 호랑이의 멸종을 공식 선언한 것은 1996년, 이 영화의 시간대로부터 다시 십수 년 뒤다. 청년들이 상처 위에 얹은 이름은 이미 반세기 전에 사라진 짐승이었다.

영화는 배경이 몇 년도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우리는 낡은 차량과 복장, 도로변 간판들로 그 시대를 어림잡을 뿐이다. 그리고 그 시대는, 국가가 사람들의 눈에 어떤 습관 하나를 심어 넣던 때였다. 도로변의 그 간첩 신고 입간판이 그 증거다.

간첩 신고 체제가 시민에게 요구한 것은 간첩을 식별하는 능력이 아니었다. 거동수상자를 신고하는 습관이었다. 실제로 신고된 사람들 대부분은 간첩이 아니었다. 국가가 수십 년에 걸쳐 심어놓은 것은 적을 알아보는 능력이 아니라 낯선 것에 즉시 이름을 붙이는 반사신경이었다.

같은 눈이다. 없는 호랑이를 상처 위에 얹는 눈과, 없는 간첩을 낯선 얼굴 위에 얹는 눈. 이 마을 사람들은 눈앞의 것을 보기 전에 이미 이름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면 국가는 이 마을에 무엇을 남겼나. 유사시에 총을 들 수 있는 몸은 여덟이었고, 그마저 끝내 오지 않는다. 대신 국가가 도로변에 박아둔 것은 지켜보는 법이다. 무엇을 위협으로 볼지, 낯선 것을 만나면 어떻게 처리할지를 새긴 입간판. 분단은 국경에만 철조망을 친 게 아니라 사람들의 눈 안쪽에도 검문소를 세웠다. 방어는 오지 않고 감시만 남은 마을. 그것이 이 영화가 고른 무대다.

영화를 보며 한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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