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기념관에 올라온 이상한 소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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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말
연간 방문객 300만 명을 넘어선 용산 전쟁기념관은 대한민국의 전쟁사를 상징하는 대표적 기념시설이다. 그러나 이 공간이 보여주는 국가주의·군사주의적 시각과 반인권적 전시에 대해 시민사회는 오래전부터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으며, 변화의 필요성 또한 꾸준히 이야기되어 왔다. 이번 연재에서는 <전쟁기념관을 바꾸는 시민활동가들의 모임 탄탄이>의 활동과 함께, 전쟁을 '기념'하는 공간을 시민의 힘으로 새롭게 상상하고 바꾸려는 시민·활동가·작가의 이야기를 총 8회에 걸쳐 소개한다. 이번 글은 포병 장교 출신의 독립연구자로 지난해 <나는 전쟁에 불복종한다>를 출간해 큰 주목을 받은 최우현 작가의 기고글이다.
어쩌다 이런 소감이 나오고 말았을까
"전쟁은 필요하다!!"
2026년 5월 7일 오전 11시경, 용산 전쟁기념관 6·25전쟁실Ⅲ(유엔참전실) 전시코너 'UN 참전용사에 보내는 편지'에 띄워져 있던 문장이다. 편지글이라기보다는 전쟁기념관 전시 전체에 대한 소감문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나는 한참을 이 문장 앞에서 서성였다. 대체 누가 썼을까. 아이일까, 어른일까. 어떤 표정으로 썼을까. 쓰고 나서는 뭐라고 말했을까. 동시에 곱씹어보았다. 전쟁의 필요를 끌어다가 어디에, 누구를 향해 투사하고 싶었던 걸까. 그리고 그 '필요'하다는 전쟁에서 본인의 위치를 어느 지점에 상정해두고 이 글을 썼을까.
사실 참 명쾌하긴 하다. 그야말로 인간의 선성(善性)은 눈곱만큼도 신뢰하지 않는 "니힐리스트의 명쾌함"(마루야마 마사오)을 담아낸 문장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이 소감문의 주인공은 전쟁을 끝내기 위한 인류의 여러 역사적 노력·실험·고민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전쟁을 선동하기 위해 만들어진 구구절절한 프레임들—방어를 위한 전쟁, 예방전쟁, 정의의 십자군 등등—마저 가차 없이 깨부수면서 전쟁 그 자체만을 지상의 가치로 밀어올리고 있다. 전쟁은 필요하다···? 2024년 한국에서 계엄을 일으켜 자기 국민들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내란수괴'조차도 감히 대놓고는 뱉지 못했던 말 아니던가.
어쩌다 이런 소감이 나오고 말았을까. 매우 당연하게도, 전쟁기념관의 역할을 추궁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언급했듯 소감문이 게시된 전시실은 3층 6·25전쟁실Ⅲ. 2층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6·25전쟁실Ⅰ,Ⅱ부터 관람을 시작하여 3층의 Ⅲ로 이어지게끔 하는 전시 동선을 고려할 때 이 소감문은 전쟁기념관이 제시한 전쟁관(戰爭觀)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결과라 추정하기에 무리가 없다. 또 같은 맥락에서 소감문 작성자의 다음 관람지가 3층의 남은 하나의 상설전시실인 '해외파병실'로 이어졌을 거라고도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궁금해졌다. "전쟁은 필요하다"고 외친 그의 신념이 마지막 전시에 이르러 약화되었을지 아니면 더 강화되었을지.
전쟁의 추악함을 씻어내는 워싱(washing)
그(소감문 작성자)의 흔적을 좇아 도달한 해외파병실 입구에서 거대한 세계지도 하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물론 그냥 세계지도는 아니었다. 미국의 뒤를 잇는 '아류 기지국가' 한국의 자부심을 담아낸 해외파병, 아니 사실상의 세계분쟁 지도였다. 이 지도를 굳이 전면에 배치한 전쟁기념관 측의 의도는 알만 했다. 기념관이 설명하는 파병의 명분은 '세계평화에 기여'라는 일곱 글자로 정리 가능하다. 그리고 여기서 '기여'는 한국의 경제성장 신화—'도움을 받던 국가에서 도움을 주는 국가로'라는 슬로건으로 대표되는—를 전쟁의 영역에서 재가공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전쟁기념관은 이렇게 말한다.
"국군, 한반도를 넘어 세계로"
"우리나라는 전쟁의 폐허를 딛고…국제 사회의 도움에 보답하고 세계평화에 기여하고자 국군을 해외에 파병하고 있습니다."
- 전쟁기념관, <전쟁기념관 전시해설 자료집(2020)>
요컨대 세계평화에 기여한다는 문구 안에는 '파병을 받던 나라에서 파병을 하는 나라로' 나아가 '전쟁에 시달리던 나라에서 전쟁에 나가는 국가로'라는 암시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전쟁의 필요'를 '기여'라는 인도적 차원의 행위로 바꾸는 말의 공정을 우리는 워싱(washing)이라 부른다.
전쟁기념관은 한국군의 '기여'가 가닿은 최초의 국가로 베트남을 호명한다. 달리 말하면 해외파병실을 찾은 관람객이 최초로 마주하는 '워싱'의 현장이 베트남이다. 그 초입에는 베트남의 '정글'을 재현한 거대한 디오라마가 설치되어 있다. 문명의 흔적이라곤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선 열대식물 오브제와 새, 원숭이, 곤충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공간 속에 관람객을 고립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립감을 해소해 주는 장치가 있으니, 바로 정글을 개척하고 전진하는 한국군 수색대의 영상이다.
관람객으로서는 자신이 한국군의 일원이 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반면 자연스럽게, 정글 어딘가에 원숭이처럼 웅크리고 있을 '베트콩'(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의 멸칭)의 얼굴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척박한 환경에서 '미개한' 원주민들에게 고초를 겪었다는 군인들의 서사는 문명화에 대한 '기여'의 레토릭을강화하고 그 나라 국민들의 가슴 속에 감사와 동정의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과거 동남아를 지배했던 식민제국—영국, 네덜란드, 미국, 일본—이 원주민에 대한 탄압(식민화)을 정당화하기 위해 정글을 '미개와 야만'의 상징으로 묘사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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