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배 될 것" 저주받던 소녀, 일본 극우와 맞서 싸운 투사가 되다

ONP 요약
SK의 최태원 회장이 모임에서 SK하이닉스 주가가 계속 오를 거라고 말했다. 또한 한국이 세계와 경쟁하려면 인공지능 같은 첨단 기술을 직접 개발해 수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보 성향:경제 리더의 미래 비전 — 대기업 회장이 글로벌 AI 경쟁에서 한국의 생존 전략을 제시하는 지도자로 평가
중도 성향:기업의 통합적 책임 — 기술·수익과 함께 사회적 가치 창출도 핵심 경쟁력으로 강조
국가가 멸망의 길에 접어들었다. 지금으로부터 백수십 년 전, 구한말 한반도 사람들은 오직 살기 위하여서 국경을 건너 생면부지의 나라로 나아갔다. 육로로 러시아 땅 연해주나 청나라 만주 땅으로, 뱃길로 청나라 상하이로 향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밖에 또 하나 열린 길이 있으니 남으로 일본 오사카에 닿는 길이었다. 조선 땅엔 농사지을 땅이 없고, 있어도 악덕지주에게 죄다 빼앗기며, 기근에다 토질까지 좋지 않아 살아갈 길이 막막한 이가 수두룩했다. 국가는 흔들리고 산업은 일어나지 못하여서 땅 파 먹고 사는 것 말고는 따로 입에 풀칠할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많은 이들이 나라 바깥으로 나아간 건 나라가 제 백성을 살지 못하도록 한 때문이었다.
자이니치는 재일 조선적 외국인이다. 일본에 산다 하여 '재일'이고, 조선국적을 갖고 있다 하여 '조선적'이며, 그래서 일본인이 아니므로 '외국인'인 이들이다. 자이니치는 다른 외국인과는 상황이 다르다. 이들의 모국인 조선이 망했고, 한반도엔 서로 다른 두 개의 나라가 들어선 때문이다. 한때 이들은 모두 일본인이었다. 대한제국을 멸망케 한 일본이 한반도를 병합하며 강제로 일본국적을 부여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제는 패망 뒤 이들에게 강제했던 국적을 일방적으로 회수했다. 그렇다고 돌아갈 나라도 없었다. 그 결과로써 자이니치는 일본 땅에서 사는 나라 없는 외국인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한국과 북한의 체제경쟁 과정에서 양국 국적을 택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나 이 중 어디도 택하지 않은 이들이 더욱 많았다.
역사가 정리하지 않은 자이니치의 문제를 오롯이 감당하는 건 자이니치, 그들 자신이다. 일본인이 받을 수 있는 혜택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건 물론, 법적 공백 상태에서 받을 수 있는 불이익도 감수해야 한다. 의료와 교육 등 공공서비스에서 이 같은 차이는 두드러진다. 취업과 진학에 있어서도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흔하다. 뿐인가. 일본에서 살면서도 일본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저 나름의 문화를 고집한다는 혐오가 일어나기도 한다. 십 수 년 전부터 크게 일었던 일본 내 반한혐오 물결에서 이들은 주요한 타깃이 되어왔다.
색깔 확실한 다큐를 만나는 귀한 자리
7월 14일 서울 홍대입구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230회 독립영화 쇼케이스에서 <호루몽>이 상영됐다. 지난해 22회 EBS국제다큐영화제 대상 수상작으로,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 애호가들에게 일찍부터 관심을 모은 <호루몽>이다. 검증된 작품성에도 독립영화 특성상 아직 정식 극장개봉 기회를 잡지 못한 탓으로, 영화를 만날 수 있는 창구가 제한적이었던 게 사실이다.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와중에도 여느 때 못잖은 관객이 상영관에 들어찬 걸 보면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가 어떠한지를 짐작할 수 있겠다.
영화는 자이니치 3세 신숙옥의 이야기다. 조부모 대에 한국서 건너온 노동자들의 자손으로, 그 시절 많은 자이니치가 그러했듯이 그들 사이에서 결혼이 이뤄지며 오늘에 이르렀다. 다른 자이니치가 대개 그러했듯, 멀쩡한 직장을 갖지 못해 가난했고 배움을 얻을 수 없어 무지했던 이들이다.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에서 자랐으나 일생 자이니치란 딱지를 떼지 못한 건 주인공인 신숙옥 또한 마찬가지였다. 영화는 희망이라곤 조금도 보이지 않는 듯했던 학창시절을 건너, 보기 드문 성공을 이룬 젊은 시절, 그리고 사회운동에 투신해 뚜렷한 족적을 새긴 오늘에 이르기까지를 내보인다.
감독은 이일하, 지난해 독특한 다큐멘터리 <청년정치백서-쇼미더저스티스>를 선보인 이다. 거의 상영기회를 잡지 못하고 사라지긴 했으나, 극좌와 극우라 해야 좋을 두 청년 정치인을 대비시켜가며 한국 정치판의 면모를 더듬어간 시도가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단순히 설정만이 아니라 작품을 구성하는 형식과 편집 등에 있어서도 감독의 개성이 엿보이는데, 그 유효함과는 별개로 관객과의 접점을 선제적으로 마련하려는 적극성이 각별히 눈길을 끈다(관련 기사 : 20대 국회의원 '0명', 그러니까 한국이 문제다).
신작 <호루몽>에서도 그와 같은 특징이 엿보인다. 영화는 시종 박진감 있는 북소리를 배경으로 신숙옥의 삶을 재구성한다. 천방지축 골목대장이던 어린시절엔 스스로가 자이니치란 걸 알고 적극적으로 그를 주변에 알렸다고 했을 만큼 남다른 기개를 가졌던 신숙옥이다. 선생님조차 그녀를 감당하지 못해 "너는 반드시 불량배가 될 것"이라고 저주 가까운 말까지 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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