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몽은 된장처럼 발효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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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길을 돌아 트레벨레스에 닿은 뒤에도 산안개는 쉽게 걷히지 않았다. 흰 벽 사이로 하몽 간판이 걸려 있었고, 골목을 빠져나간 바람은 다시 산 쪽으로 흘러갔다. 그 길과 바람, 고립의 풍경은 이미 하몽의 바깥 조건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오래된 음식의 진짜 시간은 늘 안쪽에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야 보이는 세계가 있다.
그 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세카데로(Secadero), 곧 하몽 숙성실 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소금과 바람, 자가효소와 사람의 손이 만든 시간이 있었다. 확인하고 싶었던 것도 바로 그 지점이었다. 보존료와 색소, 질산염 계열 첨가물 없이, 돼지다리와 바다소금, 고산의 건조한 공기, 장인의 손과 긴 시간만으로 어디까지 깊은 맛을 만들 수 있는가.
하몽 명가 뮤지엄 바예호, 냄새가 먼저 말을 걸었다
우리는 먼저 마을 위쪽에 자리한 하몽 명가 '뮤지엄 바예호(Museum Vallejo)'로 향했다. 기다리고 있던 직원의 안내로 전시 공간과 세카데로를 차례로 둘러보며, 트레벨레스 하몽이 어떤 환경에서 염장되고 건조되며 숙성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장독 발효로 왕신멸치액젓과 왕신간장, 왕신된장을 만들어 온 입장에서 궁금했던 것은 단순한 맛의 차이가 아니었다. 소금이 고기 안으로 스며드는 시간, 산바람이 수분을 조절하는 방식, 고기 자체의 효소가 단백질과 지방을 향과 감칠맛으로 바꾸어 가는 과정이 알고 싶었다. 질문은 하나였다. 첨가물 없이, 자연의 조건과 사람의 손만으로 어디까지 감칠맛을 끌어올릴 수 있는가.
문을 밀고 들어가자 공기가 바뀌었다. 밖의 차가운 산바람과는 다른, 묵직하고 짭조름한 냄새가 코끝을 잡았다. 인공적인 향이 아니었다. 소금에 절인 돼지 뒷다리가 오랜 시간 산바람과 만나며 만들어낸 건조숙성육의 향기였다.
한국에서 장독 뚜껑을 열었을 때 올라오는 액젓과 간장의 향과는 성격이 달랐다. 그래도 둘 다 시간을 통과한 단백질 식품의 깊은 냄새라는 점에서는 묘하게 이어져 있었다. 냄새는 설명보다 빠르게 본질에 닿는다. 눈으로 보기 전, 코가 먼저 이곳이 단순한 판매장이 아니라 오래된 숙성의 현장임을 알려주었다.
뮤지엄 바예호는 단순한 육가공 공장이 아니었다. 트레벨레스 하몽의 역사와 생산 과정을 보여주는 박물관이자, 지금도 하몽이 익어가는 살아 있는 숙성 공간이었다. 1950년대 초 마누엘 바예호 프라도스(Manuel Vallejo Prados)가 시작한 이 가업은 알푸하라 지역에서 트레벨레스 하몽을 본격적으로 알린 선구적 세카데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전시실에는 오래된 사진과 도구, 돼지 사육과 도축, 염장과 숙성에 관한 자료들이 놓여 있었다. 박물관이라기보다 한 마을의 저장 기술을 모아 둔 기억의 방 같았다.
하몽은 된장처럼 발효되지 않는다
하몽의 세계를 이해하려면 발효와 숙성의 차이를 먼저 짚어야 한다. 된장이나 간장, 액젓은 미생물의 작용이 중요한 축을 이룬다. 반면 하몽은 소금과 건조, 그리고 고기 자체에 들어 있는 효소가 긴 시간 동안 단백질과 지방을 분해하며 맛과 향을 만들어가는 건조숙성 식품에 가깝다.
무분별한 미생물 증식은 풍미보다 부패 위험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트레벨레스 하몽에서 중요한 것은 수분 조절과 바람, 온도, 시간의 균형이다. 발효와 숙성은 닮은 지점이 있지만 작동 방식은 다르다. 그 차이가 보이자 하몽의 세계도 더 선명해졌다.
가장 압도적인 순간은 수많은 돼지다리가 빽빽하게 매달린 세카데로(Secadero), 곧 건조숙성실의 중심부에 들어섰을 때였다. 천장에는 하몽이 줄지어 걸려 있었다. 모두 같은 모양처럼 보였지만, 가까이 보면 색과 윤기, 표면의 마름 정도가 조금씩 달랐다. 어떤 것은 아직 붉은 생육의 기운을 품고 있었다. 어떤 것은 오래된 나무와 비슷한 짙은 갈색으로 깊어지고 있었다. 표면에는 시간이 남긴 건조의 흔적이 묻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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