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고 학생들은 왜 그랬을까...90년 전 독일의 '웃음'이 떠올랐다

지난 6월 29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청룡기 고교야구대회. 배재고 선수들이 더그아웃에서 상대 광주제일고를 향해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를 외치며 몸을 흔들었다. 곧이어 "탱크데이"라는 구호가 터져 나왔다. 공정한 경쟁과 상호 존중을 배워야 할 학생 스포츠의 한복판에서, 특정 지역의 역사적 비극이 응원가의 후렴이 되어 흘러나온 것이다.
배재고 학생들이 외친 '스타벅스'와 '탱크데이'는, 사실 2026년 5월 스타벅스코리아가 벌인 한 마케팅 이벤트에서 비롯된 말이다. 하필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인 5월 18일에 '탱크'를 앞세운 텀블러 할인 행사를 열면서 여기에 '탱크데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1980년 5월 광주에 밀고 들어온 계엄군의 탱크를 떠올리게 하는 이 표현에, 함께 내건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까지 겹쳤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은폐하려던 그 악명 높은 거짓 해명을 연상시키는 말이었다. 민주주의를 위해 스러져 간 두 죽음의 기억을 상업 이벤트가 한꺼번에 가볍게 건드렸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공분은 순식간에 번졌다. 불매운동이 시민사회를 넘어 공직사회로까지 확산됐고, 5·18 민주화운동 관련 단체와 시민들은 회사 측을 모욕과 5·18 특별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스타벅스코리아 대표이사가 자리에서 물러났고, 신세계그룹 정용진 회장은 물론 미국 스타벅스 본사까지 잇따라 공개 사과에 나섰다. 한 기업의 대표가 사퇴하고 그룹 총수와 글로벌 본사가 거듭 고개를 숙여야 했을 만큼, 우리 사회가 이 사안을 얼마나 무겁게 받아들였는지를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다시 터졌다. 5·18 민주화운동을 꾸준히 폄훼해 온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가 이 논란을 거꾸로 끌어와, 불매운동에 맞선다는 명분으로 도리어 '스타벅스 가자'를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스타벅스에 가자'는, 그 자체로는 죄 없는 평범한 말이 특정 지역과 5·18 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암호'로 둔갑했다.
배재고 더그아웃에서 터져 나온 그 후렴이 바로 이 암호였다. 대표이사가 물러나고 그룹 총수와 미국 본사까지 사과했던, 그토록 무거운 사안을 아이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경기장의 응원 구호로 소비했다. 경기 도중 광주제일고 측이 심판진에 강하게 항의하고 나서야 그 응원은 멈췄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벌어진 역사 조롱이, 고작 몇 주 만에 학생 스포츠 경기장의 응원가로 흘러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장면을 보며, 솔직히 '충격'보다 '기시감'을 먼저 느꼈다. 배재고 더그아웃의 그 웃음이, 지난 13년간 내 교실에서 숱하게 마주쳐 온 표정과 너무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내 교실에서 마주친 장면들
고등학교에서 오래 아이들을 가르치다, 지금은 중학교 교단에 서 있다. 두 교실 모두에서 공통으로 확인한 것이 있다면, 조롱은 늘 '농담'의 얼굴을 하고 슬며시 수업 안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이다. 몇 장면을 떠올려 본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한 학생이 근현대사 인물을 다루는 발표 자료를 만들어 왔는데, 슬라이드가 어딘가 어색했다. 자세히 보니 특정 전직 대통령의 얼굴을 동물이나 캐릭터에 합성한 사진이 맥락 없이 끼워져 있었다. 발표하는 아이도, 듣는 아이들도 그 지점에서 눈을 맞추며 킥킥거렸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 침묵의 웃음 속에는 이미 서로가 아는 '암호'가 흐르고 있었다.
수업용 태블릿 배경화면에서 희화화된 정치인의 사진을 발견한 적도 있고, "~했노", "노무(너무)" 같은 말투가 남학생들 사이에서 반쯤은 일상어가 되어 있는 것도 여러 번 목격했다. 중국인을 비하하는 노래를 아무렇지 않게 흥얼거리는 아이, 사회적 약자를 겨냥한 표현을 "이거 밈이잖아요"라며 방어하는 아이도 있었다.
지난 2025년 12월 24일부터 올해 1월 6일까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소속 초·중·고 교사 177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은, 이 문제가 이미 학교 전체의 현실임을 보여 준다. '학교와 교실 내 극우화된 혐오 표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다고 보느냐'는 물음에 응답 교사의 89.8%, 곧 열에 아홉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그중에서도 '매우 심각하다' 61%, '심각하다' 28.8%였다.
실제로 그런 표현을 하는 학생을 목격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매우 자주 있다' 48%, '자주 있다' 32.2%였다. 교사 열 명 중 여덟 명이 두 눈으로 목격했다고 응답한 것이다. 학생들이 쓰는 표현으로는 전·현직 대통령 비하가 가장 많았고(50.4%), 중국·정치 혐오(37.9%), 젠더 및 여성혐오(20%), 역사 왜곡(15%), 소수자 혐오(12%), 지역 비하(3.6%)가 뒤를 이었다.
더 뼈아픈 대목은 그 다음이다. 같은 설문에서 응답 교사의 75.2%가 '혐오 표현이 나왔을 때 직접 대응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문제의 심각성은 교사가 누구보다 잘 알지만, 정작 그것을 바로잡을 손발은 묶여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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