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도병 참전용사였던 그가 국군포로 귀환활동 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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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한국전쟁을 이야기할 때, 교복을 입은 채 전장으로 향했던 열여덟 살 청년을 떠올릴까. 총성과 포화가 가득했던 전쟁 속에는 정식 군인이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전쟁을 경험하고 견뎌낸 이들이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바로 열여덟의 나이에 학도병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심구섭 참전용사이다.
그는 전쟁 당시 정훈병으로 복무하며 단순한 전투 수행을 넘어 전장의 기록과 소통, 심리전과 선전 업무 등을 수행하였다. 또한 전쟁 과정에서 북한군 포로 15명을 직접 한국으로 데려오는 임무를 맡기도 하며 치열한 전쟁의 한가운데를 통과했다. 이후에도 그는 남북 이산가족 협회 회장을 맡아 분단이 남긴 상처와 이산의 아픔을 가까이에서 마주하며 살아왔다.
한국전쟁은 흔히 전략과 전투, 승패의 역사로 기억되지만 그 속에는 이름 없이 청춘을 바치고 살아남아 오랜 시간 기억을 품고 살아온 개인들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현재 91세가 된 심구섭 참전용사는 오늘날 우리에게 전쟁이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경험임을 보여준다.
이에 6월 29일 서울시 노원구에 위치한 한 노인종합복지관에서 심구섭 참전용사님을 만나 이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들어보았다.
전쟁이 갈라놓은 가족
- 자기소개와 한국전쟁 당시 상황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제 이름은 심구섭입니다. 현재 나이는 91세이고, 한국전쟁 당시에는 국군 1군단 예하 수도사단 정훈부 소속 학도병으로 복무했습니다. 당시 저는 18세인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습니다. 원래는 강릉사범학교에 다니며 평범하게 공부하던 학생이었지만, 전쟁이 발발하면서 일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학생 신분으로 전쟁을 경험하게 되었고, 이후 학도병으로 참전하게 됐습니다."
- 전쟁 당시 가족 상황과 피난 경험은 어떠셨나요?
"저희 가족은 원래 함경남도 함흥 출신입니다. 아버지는 기자 생활과 신문사 편집국장 일을 하셨고, 해방 이후 먼저 남쪽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이후 어머니와 동생들, 그리고 저도 남쪽으로 내려와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가족 전체가 함께 정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서 어머니와 동생들은 북쪽에 남게 되었고, 결국 오랜 시간 이산가족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전쟁 당시에는 경상북도 죽변까지 피난을 갔습니다. 다시 돌아와 보니 이미 지역 분위기는 크게 달라져 있었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전쟁이 각자의 삶을 갈라놓고 있었습니다."
- 학도병으로 참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전쟁 초기 국군이 후퇴하면서 지역 치안이 무너졌고, 인민군과 의용군 활동이 많아졌습니다. 주변 친구들 가운데 일부는 인민군을 도왔고, 일부는 의용군에 들어갔으며, 전투 중 목숨을 잃은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피난을 갔다가 돌아왔는데 친구들 사이에서는 저를 두고 도망갔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당시에는 나라가 위기라는 생각과 주변 분위기 속에서 결국 학도병으로 참전하게 됐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학생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 정훈병으로서 어떤 역할을 맡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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