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일본, 어쨌든 한국서 살아가야 하니까 이것 좀 가져갈게요

해변에 큰 고래가 헤엄을 치고 있다. 길이가 족히 수십 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고래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유유히 바닷속을 누비던 고래가 콘크리트 구조물에 걸렸다. 몸부림을 쳐보지만, 소용이 없다. 급기야 몸이 반쯤은 물 밖으로 드러났다.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내야 하는데, 초조한 마음으로 멀리서 바라볼 뿐이었다.
꿈이었다. 너무나도 생생한. 그날은 아오모리현을 다녀온 다음 날 아침이었다. 한국에선 지방선거가 끝나고 개표가 진행되던 6월 4일. 밤새도록 개표방송을 보다가 새벽녘 얼핏 잠들었다가 깼는데. 아, 개표 결과도 꿈이었더라면.
아오모리 여행에서도 한국 선거에 신경이 쓰여서...
6월 초, 반년간의 오사카대학 연구원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멀리 떠나보고 싶었다. 그래서 출장지 겸 여행지로 택한 곳이 일본 본섬(혼슈)의 최북단 아오모리. 오사카에서는 1천 킬로미터가 넘는다. 일본이 속도와 안정성을 자랑하는 신칸센 열차를 이용해도 편도 5시간 이상이 걸리고 비용도 만만찮다. 결국 일본 국내선 항공편을 택했다. 내가 탄 프로펠러 비행기는 오사카 이타미공항을 출발해 본섬을 가로질러 2시간 만에 아오모리공항에 도착했다.
일본 사과의 60%를 생산하는 곳임을 자랑하듯 아오모리는 도시 전체가 사과로 뒤덮인 듯했다. 웬만한 음식점의 후식은 사과가 기본이고 주스, 빵, 파이는 물론 햄버거, 맥주, 와인, 사케, 교자까지 사과가 들어가지 않은 데가 없다.
여긴 6월인데도 날씨가 서늘하다. 곳곳에 아직 잔설이 보였다. 내가 첫날 머문 곳은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핫코다산 근처였다. 산 정상은 물론, 등산로에도 눈이 쌓여 있어서 여름이란 사실을 잊고 살았다. 국립공원 산책 코스를 오르고 싶었으나 입구 표지판이 나를 가로막았다. '곰 주의! 각자 곰 대책을 세워서 이용해 주세요.' 일본은 요즘 곰과의 전쟁 중이다. 산속이든 시내든 가리지 않고 곳곳에 출몰하여 사람을 공격한다. 뉴스에도 자주 나오지만, 당국도 조심을 당부할 뿐 뾰족한 대책은 없는 듯하다.
자연이 아름다운 아오모리에서 푸른 숲과 계곡, 바다와 온천을 보면서도 낯선 곳의 설렘보다 긴장이 앞섰다. 나도 모르게 한국의 선거 결과에 신경이 곤두섰기 때문이다. 아오모리에서 돌아왔을 때는 6월 3일 저녁 늦은 시각이었다. 한국 언론들은 출구조사 결과를 두고 분석하기에 바빴다.
그런데 개표 후 발표된 선거 결과는 나에겐 충격이었다. 그 여파는 오래 갔다. 어쩔 수 없이 일상을 버텼지만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세상 물정 몰랐던 내가 순진하게 느껴졌다. 오십 넘게 살아봤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가 옳다고 생각한 일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한두 번 겪어본 것도 아니면서 매번 일희일비하고 감정에 휘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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