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기 머금은 서울에서 떠올린 런던의 '안개와 빛'
서울의 낮 기온을 확인하며 문득 런던에 사는 언니와의 통화가 떠올랐다. 며칠 전 런던의 기온이 30도에 육박했다고 했다. 안개와 비의 도시로 기억하던 런던이 한여름 같은 더위에 휩싸였다는 소식이 이상하게도 마음에 남았다. 비 소식이 이어지는 습기를 머금은 서울의 초여름 하늘 아래서, 나는 오래 전 살았던 런던을 다시 떠올렸다.
영국에 살던 시절, 시간이 나면 참새방앗간처럼 들르던 곳이 있었다. 바로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이다. 차가운 복도를 지나 터너의 그림들이 걸린 전시실에 들어서는 순간의 감각을 지금도 기억한다. 내셔널 갤러리에서도 나는 유독 터너의 그림 앞에 오래 머물곤 했다. 이후 테이트 브리튼에서 터너의 작품을 더 깊이 마주하게 되었다. 특별한 약속이 없는 오후면 미술관을 찾아 그의 그림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나는 찰스 디킨스가 묘사한 런던의 지독한 안개를 사랑했고, 그 안개의 흔적을 찾아 디킨스가 살았던 런던의 옛 집과 그가 거닐던 뒷골목을 무던히 쏘다녔다. 터너의 강렬한 빛에 매료되면서도, 동시에 디킨스의 문장 속에서 길을 잃는 것을 즐겼던 시간들. 런던이 30도까지 올랐다는 소식을 듣자, 가장 먼저 떠오른 것도 그 두 사람이 보여주었던 '안개와 빛'의 풍경이었다.
지금 런던은 뜨거운 햇살 아래, 디킨스의 안개는 증발하고 터너의 빛만 남았을까?
마침 올해 가을, 나는 다시 런던으로 떠날 계획이다. 디킨스가 묘사했던 스산한 뒷골목의 안개와, 터너가 평생을 바쳐 캔버스에 담아내려 했던 압도적인 빛을 다시 만나러 말이다.
런던을 가둔 서늘한 기억
1775년에 태어난 터너와 1812년에 태어난 디킨스는 한 세대 이상의 차이가 났다. 그러나 두 사람은 같은 도시의 변화를 목격했다. 템스강을 따라 범선이 오가던 시대에서 증기기관차가 질주하는 시대로. 안개와 석탄 연기가 도시를 뒤덮던 런던을, 그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기록했다.
터너가 화가로 템스강의 빛과 증기를 캔버스에 담고 있을 때, 젊은 디킨스는 런던의 뒷골목과 법정, 빈민가를 소설 속에 기록하고 있었다. 디킨스에게 런던의 안개는 단순한 기상 현상이 아니었다. 그의 수많은 작품 속에서 안개는 서사의 핵심으로 자리한다. 그중 가장 압도적인 문장으로 시작하는 작품은 단연 디킨스의 대표작 <황폐한 집(Bleak House)>이다.
"Fog everywhere(안개는 어디에나 있다)."
찰스 디킨스는 <황폐한 집>의 첫 장을 이토록 강렬하게 시작한다. 이어서 그는 집요하리 만큼 런던의 습기와 안개를 낱낱이 파헤치며 묘사한다.
전체 내용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