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철, 바다만 보기엔 너무 아까운 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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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이다.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됐다. 이맘때면 사람들은 바다를 먼저 떠올린다. 발목까지 밀려오는 파도, 젖은 모래, 해 질 무렵 붉어지는 수평선. 여름휴가라는 말 속에는 늘 물기가 묻어 있다.
충남 서산도 바다를 품은 도시다. 천수만이 있고, 가로림만이 있고, 벌천포가 있으며, 간월도와 웅도가 있다. 그런데 서산에 살다 보면 알게 된다. 이곳은 바다만 보고 돌아가기에는 조금 아까운 도시라는 걸. 성곽과 절, 폐사지와 초원, 바위산과 오래된 밥상까지 서로 다른 얼굴들이 제법 깊게 숨어 있다.
서산 여행은 빨리 훑는 여행보다 천천히 열어보는 여행에 가깝다. 물이 빠져야 길이 생기고, 성문 안으로 들어가야 이야기가 들리고, 산에 올라야 바다가 제대로 보인다. 7월 서산 여행은 바닷가에서 시작해도 좋다. 다만 거기서 끝내기엔 아깝다. 조금만 방향을 틀면, 바다 너머에 숨어 있던 서산의 다른 얼굴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바다가 문을 여닫는 곳, 간월암
서산의 여름을 어디서 시작하면 좋을까. 나는 간월암을 먼저 떠올린다. 간월암은 크지 않다. 웅장한 절집도 아니고, 깊은 산속에 숨어 있는 사찰도 아니다. 작은 암자가 바다 곁에 앉아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작은 암자가 사람을 붙잡는다. 바다가 길을 열고 닫기 때문이다.
물이 빠지면 간월암으로 들어가는 길이 드러난다. 조금 전까지 바다였던 곳을 사람이 걷는다. 갯벌에는 물이 빠진 자국이 잔물결처럼 남고, 그 사이로 조개들이 숨 쉬던 작은 구멍들이 촘촘히 드러난다. 바람은 짠내를 묻힌 채 암자 처마 밑을 지나간다. 작은 연등은 쉴 새 없이 흔들린다. 물이 차오르면 길은 사라지고, 암자는 섬처럼 보인다. 같은 자리인데도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이 된다.
성벽 안에 남은 두 젊은 날, 이순신과 정약용
바다를 떠나 해미로 가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해미읍성은 서산 여행에서 빼놓기 어려운 곳이다. 성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바깥의 시간이 잠시 멀어진다. 넓은 잔디밭, 오래된 나무, 돌담을 따라 걷는 사람들. 하지만 해미읍성은 그저 예쁜 성곽도, 천주교 박해의 아픈 기억만 남은 장소도 아니다. 조선시대 충청지역 군사권을 담당하던 병영의 공간이었고, 수많은 젊은 날들이 지나간 자리였다.
이 성에는 젊은 이순신의 시간도 남아 있다. 훗날 나라를 구한 장군이 되기 전, 그는 군관으로 이곳 해미에서 근무했다. 바다와 가까운 이 성에서 젊은 무관 이순신은 무엇을 보았을까. 성벽 위로 부는 바람과 서해 쪽으로 트인 길, 병영의 긴장과 책임을 그는 몸으로 익히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 충무공의 큰 이름 앞에도, 이렇게 말없이 견디고 배우던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뒤, 또 다른 젊은이가 해미에 머문다. 다산 정약용이다. 많은 사람이 다산의 유배를 떠올리면 전남 강진을 먼저 생각한다. 그러나 스물아홉의 다산도 해미에 머문 적이 있다. 기간은 길지 않았다. 열흘 남짓한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가벼운 시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정조의 눈에 든 젊은 인재였던 그는, 동시에 서학을 둘러싼 의심과 정쟁의 공기 속에 놓여 있었다.
해미읍성을 걷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이 돌담은 누군가에게는 병영의 울타리였고, 누군가에게는 잠시 머문 유배의 그늘이었으며, 또 누군가에게는 신앙을 지키다 생을 마친 마지막 자리였다. 해미읍성은 죽음만 기억하는 성이 아니다. 견딤과 배움, 신념과 시대의 파도가 함께 쌓인 성이다.
꽃이 진 뒤 더 깊어지는 절, 개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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