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AI 성장도 결국 전력…정부, 에너지 자립 속도전
정부가 올 하반기 '에너지 자립'에 속도를 낸다. 중동발 고유가 충격으로 드러난 에너지 안보 취약성에 대응하는 동시에, 반도체·인공지능(AI) 등 '3대 메가프로젝트'로 급증할 전력 수요까지 감당해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게 됐기 때문이다.
다만 재생에너지 확대와 안정적인 전력 공급, 탄소중립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에너지 안보와 공급망 자립 '투트랙'
정부가 발표한 '2026년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에는 'K-공급망·에너지 자립 확보'가 핵심 과제로 담겼다. 필요한 에너지를 최대한 국내에서 확보하는 '에너지 자립'과 외부 충격에도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조달하는 '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국내 생산이 가능한 품목에는 생산세액공제와 보조금을 지원하고, 국내 생산이 어려운 비료용 요소와 나프타, 원유, 비철금속 등은 비축을 확대한다. 핵심광물 재자원화율도 2030년까지 7%에서 20%로 높여 도시광산 산업을 육성할 계획이다.
국내 생산도, 비축도 어려운 품목은 공급망 투자를 통해 해외 생산기반을 확보한다. 특정 국가 의존도가 높은 품목을 대체 수입할 경우에는 공급망안정화기금을 통해 저리로 수입비용 전액을 대출해 준다.
에너지 부문에서는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기가와트) 보급 조기 달성'이 핵심이다. 정부는 태양광 설비를 현재 30.8GW에서 87GW로, 풍력은 2.5GW에서 9GW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철강·석유화학·정유·시멘트·반도체 등 탄소 다배출 업종의 탈탄소 전환 로드맵을 마련하고, 향후 10년간 790조원 규모의 정책금융을 기후 분야에 투입한다. 구체적인 전환 전략은 다음 달 발표 예정인 한국형 녹색대전환(K-GX)을 통해 제시될 전망이다.
고유가 충격에 메가프로젝트까지…급해진 전력 확보
정부가 에너지 자립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중동 정세 불안과 3대 메가프로젝트 추진이라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 미국·이란 충돌 과정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가 커지며 원유와 가스 공급망의 취약성이 다시 확인됐다. 현재 한국의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90%대를 웃돈다.
여기에 반도체 산업단지와 AI 데이터센터 구축으로 대규모 신규 전력 수요까지 발생할 전망이다. 호남 반도체 산업단지(6.3GW)와 AI 데이터센터(18.4GW) 등 메가프로젝트에서 예상되는 전력 수요만 합쳐도 2035년 국가 전체 전력소비 전망치의 24.3%에 달한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지난 13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현재 용인과 호남 반도체 시설, AI 데이터센터로 인해 확정적으로 늘어날 전력 수요만 약 30GW이며, 잠재수요까지 합치면 40GW를 넘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기차 전환과 건물 전기화까지 더하면 2040년까지 약 50GW 이상의 추가 전력 수요가 발생한다"며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를 100GW 이상으로 대폭 늘리고,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조화롭게 믹스하는 에너지 대전환에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우선 한국전력과 전남광주통합특별시와 함께 신장성~신광주 송전선로를 활용해 호남 반도체 산업단지 예정지에 전력을 공급하는 방안을 16일 마련했다. 기존 송전망을 최대한 활용해 2029년까지 공급망을 구축하고, 2030년부터 전력을 공급한다는 구상이다.
"공급 확대만으로는 부족"…기후목표 후퇴 우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의 공급 확대 기조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기업 수요를 맞추는 데 집중하다 보면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조달하는 'RE100'과 2040년 석탄화력발전 전면 폐지 등 정부가 제시한 기후 목표가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다.
녹색전환연구소 최기원 경제전환팀장은 16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3대 메가프로젝트에 전력을 어떻게 공급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지만, 온실가스 배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탈탄소 전력망을 구축해 메가프로젝트에 전력을 공급한다고 가정해도 2035년에는 연간 2천만톤 이상의 스코프2(전력·열 사용에 따른 간접배출) 배출이 발생할 수 있다"며 "현재 계획의 규모와 속도는 탄소중립 목표를 사실상 달성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기후넥서스 이지언 대표는 "(곧 발표될)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달성을 전제로 마련되는 계획인데, 지금 메가프로젝트가 발표되는 방식은 국가 감축목표가 없는 것처럼 논의가 흘러가고 있다"며 "국가 기후위기 대응과 온실가스 감축, 재생에너지의 한계를 함께 고려해 적정 전력 수요를 다시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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