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멜라스에 남아 말대꾸했을 사람, 우석균

안녕하세요, 저는 우석균 선생님의 첫째 딸 우지안입니다. 오늘 아빠를 기억하기 위해 모여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앞에서 많은 분들이 아빠가 얼마나 훌륭하고 위대한 분이었는지 말씀하실 것 같아서, 저는 아빠가 웃긴 사람이었다는 걸 말하고 싶습니다. 아빠는 웃는 것을 좋아하고, 웃기는 것은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빠는 놀리는 걸 특히 좋아했습니다. 말실수라도 하면 절대 놓치지 않고 잽싸게 말꼬리를 잡으며 놀리곤 했습니다. 함께 투쟁하는 동지분들도 그렇게 성가시게 놀렸는지 궁금합니다.
저도 좋아하는 사람들을 꼬치꼬치 놀리는데, 알고 보니 제가 어렸을때 엄마 아빠가 개그우먼으로 키우려고 훈련을 시켰대요. 어른들한테 말대꾸를 하면 혼을 내는 대신에 잘한다 잘한다 또 해봐라 했다고 합니다.
아까 입관식에서 아빠한테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몸 위에 다라니경을 덮어주셨어요. 저승에서 7개의 심판을 잘 통과하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7개나 되는 심판을 우리 아빠가 통과할 수 있을까요? 걱정되는 마음에 제가 관에 "심판 조심해"라고 썼더니 동생 수안이가 "말대꾸하지 마"라고 댓글을 덧붙이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아는 저희 아빠는 저승에서도 지배 계급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사람이 아닙니다. 분명히 말대꾸를 할 겁니다. 아마 벌써 저승 곳곳의 불평등과 부조리에 맞서고 혁명을 도모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빈소에 혼자 서서 아빠 사진을 보면서 자꾸 물어보게 됐습니다. 아빠, 어디 갔어? 여기에 나만 두고 어디 갔어? 전부 다르게 울고 있는 수백 개의 얼굴이 아빠를 찾고 있는데, 나랑 여기 있어 줘야지. 여기는 내 자리가 아니라 아빠 자리잖아.
아빠는 강해질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아빠는 우리 집에는 없었습니다. 대신 싸우느라 바빴습니다. 거리 곳곳 투쟁 현장은 안 간 곳이 없었습니다. 아빠가 한미FTA·광우병에 관해 백분토론에 나갔을 때, 저는 티브이에 나온 아빠가 자랑스러워서 디시인사이드에 "저희 아빠 토론 잘했나요?"라는 글을 올릴 정도로 어렸습니다. 댓글에 다들 잘했다고 해주더라고요. 아빠에게 직접 커밍아웃하기도 전에 아빠가 쓴 동성애자와 HIV 감염인, 에이즈 환자를 향한 낙인에 관한 신문 칼럼을 읽고 위로받기도 했습니다.
전체 내용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