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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셋의 강순희가 보내는 위로와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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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셋의 강순희가 보내는 위로와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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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큰 사건이 일어나면 그것과 관련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정체성이 생긴다. 소소하게는 출산과 육아라는 사건을 통해 '배여진'으로만 살던 나에게도 '○○엄마'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부여되었다.

한국은행을 다니며 부산 범어사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를 하고, 결혼을 해서 소소한 행복과 미래를 꿈꾸던 강순희는 1975년 4월 9일 이후로 '인혁당 유가족'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생겨버렸다. 1975년 4월 9일 새벽, 대법원 선고가 내려진 지 불과 18시간 만에 8명의 시민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바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다. 그리고 강순희의 남편 우홍선은 8명의 사형수 중 한 명이었다.

책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는 고 우홍선의 아내 강순희가 말하고 작가 유시민이 듣고 정리한 책이다. 강순희의 입으로 풀어낸 강순희의 인생에는 여러 정체성의 강순희가 등장한다.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장녀 강순희, 피난민 강순희, 직장인 강순희, 사랑에 빠진 강순희, 우홍선의 아내 강순희, 네 자녀의 엄마 강순희, 사형수의 아내 강순희, 싸움꾼 강순희 그리고 노인 강순희. 아흔셋의 순희는 이제 이렇게 말한다.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지금까지 내 삶은 불행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난 고개를 갸우뚱했다. 사람이 겪을 수 있는 불행 중 가장 큰 불행을 겪으신 것 같은데 불행하지 않았다니. 책을 다 읽고 나니 나 역시 강순희의 삶은 불행하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책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는 '사람 강순희'의 인생을 통해 전쟁과 분단의 역사, 뼈아픈 현대사와 민주화의 역사의 흐름을 자연스레 짚어낸다. 하지만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사람 강순희'의 소소한 삶이다. 사랑이 많으셨던 강순희의 부모님, 하얼빈과 만주, 이북에서의 삶, 피난민으로서의 삶, 옷장사와 보육원 교사, 한국은행 직원 등 돈을 벌던 강순희의 삶, 학교 선생을 꿈꾸던 강순희, 범어사에서 우홍선과 사랑 노래를 주고 받으며 사랑에 빠진 강순희의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만 같다. '인혁당 유가족'의 수식어가 빠진 '사람 강순희'의 인생은 시대의 굴곡진 삶이 담겨 있지만 참 달큰한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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