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도라의 운동화 끈을 바라볼 수 있을까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대략 초등학교 3학년 즈음부터였다. 계기는 친구가 시작한 블로그였다. 생물학에 관심이 많았던 친구는 채집한 곤충들의 사진과 숲속에서 찍은 사진들을 블로그에 올렸다. 무언가를 기록하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자신의 열정과 일상을 블로그에 담는 모습을 보고 흥미를 느껴 나만의 블로그를 열었다.
막연하게 시작한 글쓰기는, '카잔의 기적'을 보고 축구에 막 빠져들 무렵부터 축구 이야기에 집중됐다. 블로그에 좋아하는 팀에 대한 이야기를 적고, 선수와 감독들에 대한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담기 시작했다.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블로그에서 맺은 인연 덕분이었다. 나처럼 축구 글을 쓰던 한 이웃이 포털 사이트에 자신의 기사가 올라왔다는 글을 올렸다. 어린 내게는 개인이 쓴 글이 뉴스가 되어 수많은 사람에게 전달된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시작한 글쓰기는 어느덧 내 일상의 일부가 됐다.
그때의 나는 글을 쓰다가 막히면 사전을 뒤지거나 한참 동안 모니터만 바라보곤 했다. 그러나 몇 년이 흐른 지금, 학생들은 막힌 문장을 AI에 묻는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AI와 함께 글을 쓴다는 것
나는 문학 작품을 짓는 것도 좋아한다. 그러나 소설을 쓸 때는 늘 '창작의 고통'이 수반되기 마련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고통은 대개 문장이라는 가장 세밀한 부분에서 찾아왔다.
특히 머릿속에 장면은 또렷한데 그것을 표현할 적절한 어휘가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같은 동사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발견하고는 문장을 통째로 지우기도 한다. 이 역시 창작의 일부라지만, 귀찮은 일을 피하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사람의 본성이다. 그래서 종종 AI에게 "이 상황에 어울리는 동사/형용사를 찾아줘"라고 묻곤 한다.
AI는 내가 이미 써낸 글을 더 '읽기 쉽게' 다듬는 데에도 유용하다. 문장의 호흡이 지나치게 길지는 않은지, 같은 표현이 반복되지는 않는지 물으면 몇 초 만에 대안을 내놓는다. 글이 도무지 매끄럽게 읽히지 않을 때는 문장 자체를 고쳐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그러나 AI가 제시한 단어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은 답을 읽고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하며 다시 다른 표현을 찾는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AI가 내놓은 문장을 거부하는 과정에서 내가 원했던 문장이 무엇인지 선명해질 때가 있다. 확률에 따라 단어를 조합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AI는, 무엇이 자연스러운 문장인지 알려주는 데에는 능숙하지만, 내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지까지 대신 결정해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오래 기억하는 문장들은 대개 '가장 자연스러운 문장'과는 조금 다른 곳에 있었다.
AI는 도라의 운동화 끈을 바라볼 수 있을까
사실 나는 원래 문학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주기적으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아리에 다녔기에 일주일에 한 권씩의 소설을 읽었지만, 그마저도 그다지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훗날 나의 '최애 소설'이 될 작품인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를 읽게 되었다.
<아몬드>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 '윤재'의 성장을 다룬 작품이다. 작품 속에는 윤재의 인생에 닥쳐드는 많은 오르내림이 담겨 있다. 그 스토리 자체로도 아몬드라는 소설은 흡입력이 넘쳤지만, 어린 나에게 가장 신선한 충격을 일으켰던 문장은 이것이었다.
— 도라의 운동화 끈이 풀려 있다. 그 끝이 내 신발 밑으로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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