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유학파 베테랑 연주자의 월급명세서...말문이 막힌다

최준용은 호른 연주자다. 독일에서 공부를 마친 뒤 국내 다른 관현악단에서 잠시 활동하다 청주시립교향악단(청주시향)에 입단했다. 그가 이렇게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 21년 전이었고, 무대에 서는 사이 고향의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다. 세월은 그의 머리에도 흔적을 남겨, 어느새 흰 머리가 더 많아졌다.
청주시향은 빼어난 역량을 지닌 관현악단이다. 오랜 팬들이 많아, 공연 예매가 시작되는 날이면 예매 사이트에서 대기하다가 시계가 오후 2시를 치는 순간 입장해야 한다. 그리고 원하는 자리를 망설임 없이 골라야 한다. 어느 좌석이 좋을까 고민하는 순간, 그 자리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나 역시 낭패를 본 게 한두 번이 아니어서, 원하는 좌석을 미리 머리에 넣고 있다가 쏜살같이 그 자리를 고른다.
이렇듯 사랑받는 교향악단에서 연주하고, 그 무대가 나고 자란 곳에 있으니 감회가 남다를 만하다. 하지만 이 베테랑 연주자는 청주시향을 그저 "삶의 터전"이라고 말한다. 예술을 묘사할 때 흔히 동원되는 미사여구를 기대한 나로서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혹시 갑작스레 답하느라 최선의 표현을 고르지 못한 건 아닐까? 다시 물었지만,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진솔한 고백이었다. 교향악단의 무대는 아름답고 조화로운 음악을 선사하는 공간이지만, 그 선율을 만들기 위해 단원들은 먹고 살아야 한다. 그들이 빚어내는 음악에 환호하는 관객들조차 이 사실을 쉽게 잊는다. 음악을 만드는 일이 생계를 책임지는 노동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노조 조끼를 입고 있었다. 무대 밖에서 연주자를 만난 일이 없는 내게 연주복이 아닌 의상은 낯설게 보였다. 어쩌면 그에게도 낯선 경험일지 모른다. 노조가 만들어진 게 불과 3년 전이고, 그가 단복을 입고 무대에 선 세월은 그보다 훨씬 길기 때문이다. 내가 연주단의 처우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이보다 더 솔직할 수 없는 답을 내밀었다. 급여 명세서를 건넨 것이다.
그곳에 찍힌 숫자 앞에서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에게는 아내와 두 딸이 있다. 하지만 명세서에는 4인 가족 생계를 책임지기 어려운 액수가 적혀 있었다. 청주시향은 입단이 쉽지 않은 곳이다. 최근 바이올린 연주자 한 명을 뽑는데 99명이 지원했다. 그런 곳에서 20년 넘게 근속해 온 연주자의 보수가 이 수준이라면, 이건 개인이나 일개 연주단의 문제가 아니었다.
"최저생계비나 될까요?"
실제로 그랬다. 명세서에 찍힌 금액은 2026년 기준 4인 가구 개인회생 최저생계비(389만 6843원)에 턱없이 못 미치는 액수였다. 거기에 공연을 할 때 받는 수당이 추가되겠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말한 "삶의 터전"이라는 대답의 의미를. 나는 연주자들의 음악을 즐기고, 그들의 재능과 노력을 존경하면서도, 그들이 나와 같이 밥을 먹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노동자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장미는 빵 위에 핀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문화적 성취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여기에는 '케이팝'으로 대표되는 대중음악뿐 아니라, '케이클래식(K-Classic)'으로 불리는 고전음악도 포함된다. 세계 콩쿠르를 석권해 온 젊은 연주자들과, 세계 유수 연주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한국 관현악단의 성과는 우리 모두의 자부심이다.
이 성취가 우리를 뿌듯하게 만드는 것은, 음악이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알기 때문이다. 삶에는 '빵과 장미' 모두가 필요하다. 예술은 우리의 삶이 그저 먹고 사는 것에 머물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도록 자극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연주자와 악단이 한국을 넘어, 세계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장미'를 선사하는 이들이 정작 '빵'을 제대로 얻지 못한다면 어떨까? 그런 예술가가 생계를 고민해야 하고, 이들이 속한 곳이 공립예술단체라면, 그 사회가 예술을 아끼고 존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국공립예술단은 두 가지 면에서 중요하다. 하나는 시민 모두가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무료 혹은 아주 저렴한 가격에 수준 높은 예술을 선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이 시장의 논리 속에서 침몰하지 않도록 창작자와 연주자들의 삶을 보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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