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이것도 빼앗나? 명장의 '숨겨진 지식'이 위험하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드물게 인공지능(AI)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산업과 기술 인프라를 동시에 갖추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산업과 초고속 인터넷·5G 네트워크 등 AI 산업 발전의 핵심 기반을 보유하고 있고, 반도체·자동차·조선·철강·건설 등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는 한국 AI 산업의 차별화된 강점이다. 제조업 전 과정에서 축적된 생산·품질·안전 관련 데이터는 단순한 디지털 정보가 아니라 오랜 시간 형성된 산업 경험의 결과물이며, 다른 국가가 단기간에 모방하기 어려운 전략적 자산이다. 그런데 이 모든 인프라보다 더 근본적인 경쟁력이 있다. 바로 현장 숙련노동자의 경험·직관·판단으로 형성된 '암묵지(暗默知, tacit knowledge)'다. 숙련노동자들은 반복된 작업과 현장 대응을 통해 위험을 감지하고 품질 문제를 예방하며 생산 공정을 최적화하는 체화된 능력을 축적해 왔다. 이러한 암묵지는 문서나 매뉴얼로 완전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AI와 결합될 경우 제조 공정의 효율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는 핵심 자원이 된다. 우리나라는 AI의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 산업, AI가 실제로 적용될 제조업 산업현장, 그리고 AI가 학습할 숙련노동자의 암묵지라는 세 가지 핵심 요소를 동시에 모두 갖춘 세계적으로 드문 국가다. 제조업 암묵지 AI 모델 사업에 대한 노사의 입장 최근 한국 제조업은 저출생과 고령화, 청년층의 제조업 기피 현상, 기존 숙련공의 고령화가 맞물리면서 심각한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단순히 일할 사람이 줄어드는 문제를 넘어, 제조업의 핵심 경쟁력을 지탱해 온 숙련 인력의 단절이 가시화되면서 산업의 지속가능성 자체가 위협받는 실정이다. 현장 명장들의 은퇴는 단순한 인력 이탈이 아니라, 한국 제조업을 이끌어온 고도의 생산기술과 현장 판단체계 자체가 통째로 소멸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2026년 4월 산업통상부는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2026년도 제조 암묵지기반 AI 모델개발 사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제조 명장의 오랜 경험과 직관, 순간적인 판단력이 녹아 있는 암묵지를 데이터로 전환하고, 이를 학습한 특화 AI 모델을 개발해 제조혁신을 달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총 48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며, 자동차·조선·철강·전자·바이오·화학 등 10대 제조업 분야에서 약 30개 과제를 6월까지 선정할 계획이다. 경영계는 이 사업을 국가 경쟁력 확보와 산업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로 보며 적극 환영하고 있다. 고령화와 숙련공 부족으로 발생할 수 있는 기술 단절 위험 속에서 명장들의 암묵지를 데이터화하는 작업은 과거의 기술을 안정적으로 전승함과 동시에 현장의 생산성 혁신을 달성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으로 평가받는다. 이와 함께 중소기업이 소외되지 않도록 정부가 주도하여 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하고, 맞춤형 컨설팅과 전문 인재 양성 등 실질적인 지원책을 패키지로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노동계는 제조업의 구조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AI를 활용해야 한다는 당위성 자체에는 공감하면서도, 이 사업이 현장 노동자의 권익 보호와 충분한 사회적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것에 대해선 강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더불어 노동의 본질적인 성격, 고용의 안정성, 그리고 권리와 이익의 배분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