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은 왜 광역 4명 당선에 웃는 군소 정당이 됐나

AI 통합 요약
6월 3일 지방선거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일부 유권자들이 투표를 못한 사태 이후, 국민의힘은 17일 의원총회를 열어 선거소청 지역 범위를 결정했다. 당 지도부는 전국 규모 재선거를 추진하려 했으나, 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하여 결국 7개 권역에서만 소청하기로 결정했으며, 이 과정에서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되며 장동혁 대표의 거취 논의가 대립했다.
진보 성향: 장동혁 대표가 선거 패배의 책임을 피하려고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이용하면서, 선거소청 범위를 5곳에서 16곳까지 계속 바꾸며 혼선을 초래했다. 일관성 없는 태도와 의원들의 반대에도 재선거를 강행하려는 모습은 당내 신뢰를 훼손했다.
중도 성향: 투표용지 부족 문제는 실제로 발생했으나, 국민의힘이 선거소청 범위를 제시하는 과정에서 지도부와 의원들 간 이견이 노출되었으며, 결정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당내 혼란과 공회전이 반복되었다.
보수 성향: 투표용지 부족으로 실제 투표를 못한 유권자가 발생한 만큼 선거관리 체계의 문제를 심각하게 봐야 하며, 재선거 검토도 정당한 요구다. 다만 일부 의원들이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지적도 있다.
유권자 마음을 흔들며 온 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지방선거가 끝났다. 선거가 끝나면 승자와 패자가 명확히 구분돼 평가가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숫자에서 앞선 여당은 이겼다는 말을 못 하고, 대패한 야당은 마치 승리라도 한 것처럼 뻗대고 있는 이상한 광경이 나오고 있다. 왜 그런 걸까? 외관과 내용의 차이가 빚은 애매함이 원인이라 볼 수 있겠다.
선거 결과를 말하자면, 더불어민주당에는 분열의 싹이 감출 수 없이 커졌음을 인정해야 하는 선거라고 할 수 있겠다. 반대로 국민의힘에는 내줄 건 다 내주었지만, 미래에 승부를 걸어 볼 두 인물을 지켜냈다는 위안을 얻은 선거였다고 하겠다.
선거 결과를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며,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볼 수 있었다.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기준이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서울을 잃은 탓에 광역단체장 12명을 당선시키고도 죄인이 됐고, 국민의힘은 겨우 4명을 당선시켜 놓고도 기세가 등등하다. 그래서 선거 결과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듯하다.
보수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주변에서는 '언제부터 제1야당 국민의힘이 광역단체장 4명 당선에 만족하는 군소 정당이 됐는가' 하는 자조 섞인 탄식이 줄을 잇고 있다. 그렇다. 확실히 한국 보수는 헌정 이후 최악의 상태에 처해 있고, 국민의힘은 보수를 이끌어갈 능력과 명분을 잃은 채 억지로 연명하는 모양새다.
한국을 이끌던 보수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기득권이라는 달콤함에 빠져 보수 가치를 망각한 채 권력 유지에만 집착했던 행태를 맨 먼저 꼽겠다. 이제는 순순히 인정해야 한다. 당내에서 인물을 키우지 않은 채 외부 수혈로 버티던 관행은 이제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민심을 제대로 읽을 줄 모른다는 지적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 정치 정상화를 위해 보수를 되살려 보자는 고민은 이런 팍팍한 현실 인식에서 출발한다.
보수 재건을 위한 생각의 고리는 자연스레 외국, 특히 미국 정치로 이어졌다. 한국에서는 보수가 이렇게 어려운 처지인데, 미국에서는 상황이 좀 달라 보였다. 도널드 트럼프라는 인물이 늘 좌충우돌하며 논란의 중심에 있지만, 결국 보수의 틀 안에서 나라를 이끌어 가고 있다. 그걸 보면 미국에서 보수가 얼마나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지 새삼 느낀다. 미국 보수의 토대를 이토록 강고하게 다진 사람이 누구일까? 바로 로널드 레이건이다.
1981년에 취임한 제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은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으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미국의 황금기'가 연상되고, 그의 매력적인 미소를 지금도 많은 이들이 기억한다. 그러니 레이건은 매우 순조롭게 대통령에 당선됐고, 집권 시기도 그만큼 평화로웠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1980년, 레이건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 상황은 쉽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대통령 당선 자체가 역사적인 사건이었음을 알게 된다.
당시는 프랭클린 루스벨트로부터 시작된 민주당 출신 대통령의 오랜 집권 이후였다. 당시 미국 정치는 민주당이 좌우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그 시기에 공화당 출신 대통령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탄핵이라고 봐도 무방한 닉슨의 수치스러운 사임, 그의 뒤를 이은 포드의 대선 패배가 악재였다.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당시 미국 보수는 정치적, 도덕적으로 완전히 기반을 상실한 상태였다.
이러한 미국 보수의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레이건이 당선되었다. 심지어 현직 대통령 지미 카터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그의 등장은 미국 현대사의 질서를 진보 우위에서 보수 우위로 바꾼 역사적 전환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레이건의 집권이 '미국 보수 재건'과 직접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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