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시행 넉 달 만에 보완 수순…삼성 노조가 촉발
ONP 요약
이 대통령이 최근 노조들이 요구하는 것들(회사의 투자 결정이나 이익 배분)이 협상의 대상이 되는 범위가 너무 넓어졌다고 걱정했습니다. 정부가 어디까지를 협상 대상으로 볼 수 있는지 명확한 기준을 정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중도 성향:기준 정립 필요 — 노란봉투법 시행 후 노동쟁의 범위가 모호해져 정부가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으로 관찰
보수 성향:법 부작용 강조 — 노란봉투법으로 인해 기업의 경영상 결정까지 협상 대상이 되는 폐해를 지적
지난 3월 시행된 개정 노동조합법(노란봉투법)이 4개월여 만에 대통령발(發) 보완 수순에 들어갔다. 법이 보호하려던 하청·특수고용 노동자가 아니라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 정규직 노조가 대규모 투자 계획까지 단체교섭 대상으로 삼겠다고 주장하면서다.
22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전날 국무회의에서 노란봉투법 관련 지침과 고시 등의 정비를 직접 지시했다. 정부는 이 대통령의 '노란봉투법 보완 작업' 지시에 따라 즉각 후속 작업에 착수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시행령과 시행규칙, 고시, 해석지침 개정 가능성을 모두 열어놓고 검토하겠다"며 "법 취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의미를 보다 명확히 하는 방향으로 가능한 한 빨리 대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논란의 시작은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의 지난 13일 성명이었다. 노조는 "노란봉투법에 따라 조합원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상 결정도 교섭 대상이 됐다"며 정부가 추진 중인 호남 반도체 메가프로젝트를 2027년 단체교섭 의제로 다루겠다고 밝혔다. 조합원 설문에서 84%가 프로젝트에 반대했다는 결과도 제시했다.
노동부는 같은 날 보도설명자료를 내고 "기업 투자나 공장 증설 등 사업경영상의 결정 자체는 근로조건에 실질적·구체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려워 개정 노동조합법상 단체교섭 및 노동쟁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전날 국무회의에서 "이런 식으로 하면 끝이 없다"며 "결국 일정한 기준을 정해줘야 할 것 같다"고 김영훈 노동부 장관에게 지침과 고시 정비를 주문했다. 기존 해석지침으로도 정리할 수 있는 사안이 노조의 '무리수'를 계기로 시행 넉 달 된 법령의 보완 논의로까지 번진 셈이다.
이미 '답이 있는' 질문이었다문제가 된 조항은 개정법 제2조 제5호다. 개정법은 노동쟁의의 정의에 기존 '근로조건의 결정' 외에도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 '근로자 지위', '사용자의 명백한 단체협약 위반'을 새롭게 포함했다.
종전 법과 판례는 정리해고처럼 근로자의 지위 자체를 박탈하는 결정마저 '고도의 경영상 결단'이라며 교섭 대상에서 제외했고, 그 결과 이를 둘러싼 쟁의는 목적상 불법으로 판단돼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개정법은 이러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노동쟁의의 범위를 넓힌 것이다.
다만 확장에는 처음부터 한계선이 그어져 있었다. 노동부 해석지침은 헌법상 노동3권과 영업의 자유를 '규범조화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원칙 아래, 기업 투자나 합병·분할·양도 등 사업경영상의 결정 '그 자체'는 근로조건에 미치는 영향이 추상적·잠재적인 수준에 그쳐 교섭 대상이 아니라고 명시하고 있다.
교섭 대상이 되는 것은 그 결정의 이행 과정에서 정리해고나 구조조정에 따른 배치전환 등 근로조건의 실질적·구체적 변동이 발생하는 경우다. 지침은 상법상 이사회나 주주총회 권한처럼 사용자에게 전속된 결정 역시 의무적 교섭사항이 아니라고 적시했다.
이 기준에 비춰보면 삼성전자 노조의 요구는 이미 답이 정해져 있던 질문이었다. 광주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할지, 400조 원을 투자할지 여부는 교섭 대상이 아니다. 반면 신규 공장 가동 과정에서 현실화될 전환배치나 산업안전, 처우 문제는 충분히 교섭 테이블에 올릴 수 있다. 김 장관이 국무회의에서 "경영상의 결정 자체를 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해당하지 않는다"고 답한 것도 기존 해석지침을 그대로 설명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노란봉투법 자체를 둘러싼 후폭풍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경영계는 개정법이 노사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며 재개정을 요구해 왔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서는 응답 기업의 87%가 개정법이 노사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다. 정부가 시행 넉 달 만에 관련 규정 정비를 언급하면서 '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경영계 주장에 힘을 실어준 모양새가 됐다.
대통령이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배분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저 같은 경우는 쟁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개인 의견을 밝힌 점 역시 논란거리다. 노동쟁의 대상 여부는 부당노동행위 판단과도 직결되는 법 해석의 영역인데, 대통령이 사실상 해석의 방향을 제시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임금으로 지급할지 성과급으로 지급할지는 오랜 기간 노사가 협의해 정리해온 과정의 결과물"이라며 "정당한노동의 대가를 어떻게 배분할지를 협상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가장 기본적 역할"이라고 반박했다.
또 정부의 정비 지시와 관련해 "오랜 투쟁 끝에 만든 개정 노조법을 정부 행정지침으로 다시 축소·무력화하려는 시도"라며 "시행령과 지침을 통한 노동권 침해 시도를 중단하고 노사 간 자율 협상의 원칙을 존중하라"고 촉구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도 논평을 통해 "노동자가 경영상 결정에 문제를 제기한다고 해서 곧바로 노동쟁의가 성립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노동쟁의는 법이 정한 엄격한 절차와 요건을 거쳐야 한다. 이를 마치 기업의 모든 경영권 행사를 제약하는 것처럼 과장하는 것은 개정 노조법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와 사회적 갈등만 키울 뿐"이라고 지적했다.
"정작 교섭은 10건뿐인 현실은 외면"대통령 발언의 '선택성'을 문제 삼는 목소리도 나온다. 법의 원래 취지였던 원·하청 교섭은 시행 이후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부가 시행 100일을 맞아 공개한 자료에서도 하청노조의 교섭 요구는 1천 건을 넘었지만 실제 교섭이 진행된 사례는 10건 안팎에 그쳤다. 원청의 교섭 거부·해태로 하청노조들이 쟁의 절차에 돌입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고, 현대제철 사건에서는 대법원이 개정법 통과를 이유로 사용자성 판단을 미루는 일까지 벌어졌다.
노란봉투법 개정 운동을 해온 '손잡고'의 윤지선 활동가는 "실제 교섭이 이뤄져야 할 현장에서는 아직 제대로 성사된 교섭이 한 건도 없다"며 "정작 대통령이 먼저 언급했어야 할 것은 교섭 거부로 진척되지 않는 현실과 대법원이 판단을 미루고 있는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정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사례 하나 때문에 시행 4개월 된 법령 보완을 논의하는 것이 맞느냐"며 "제도를 손질하려면 원청의 교섭 거부라는 실제 현장의 문제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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