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꽃 다루는 선관위, 이대로는 곤란하다
지난 3일 실시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한국 선거 행정의 참담한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서울 송파구를 비롯한 14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조기 소진돼 투표가 중단되거나 지연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유권자들은 번호표를 든 채 대기를 이어가야 했다.
선관위의 부실 대처는 시민들의 거센 분노를 불렀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극우 세력의 전유물이던 억지스러운 '부정선거 음모론'에 불길을 키우는 막대한 장작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선관위의 처참한 행정 실패와 무능이, 결과적으로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려는 음모론자들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를 쥐여준 꼴이 되었다. 실제로 송파구의 한 투표소는 선거일 이틀 뒤인 5일 오전에서야 경찰의 힘을 빌려 개표함을 반출했고, 이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까지 빚어졌다.
"무조건 재선거"를 외치던 국민의힘은 서울에서 자당 후보가 승리하자 슬그머니 입을 닫는 촌극을 보여줬다. 선거 결과에 따라 공정성의 잣대가 바뀌는 형국이다. 선관위의 어처구니없는 관리 부실 탓에 근거 없는 '부정선거론'이 우리 정치의 무시할 수 없는 골칫거리로 다시 부상했고, 선거제도를 향한 사회적 신뢰는 추락 위기에 놓였다.
일각에선 이번 일이 우연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온다. JTBC 등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선거가 있는 해에 선관위 내부 휴직자가 급증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올해도 지난 4월 기준 176명이 휴직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두고 격무를 피하려 선거철에 도피성 휴직을 떠나는 조직 내 병폐가 만연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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