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한 여고생, 도망간 담임교사"... 이 영화가 던진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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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임신과 낙태. 어쩌면 그는 흔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못해도 그를 다룬 영화며 소설을 십 수 편은 보았으니까 말이다. 생물학적으로는 임신이 충분히 가능한 나이지만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청소년의 임신과 출산, 또 성행위는 좀처럼 용인되지 못했다. 그 엇갈림이 때로는 보호가 아닌 제도 밖 방치로 이어지기도 한다. 임신한 뒤 출산 혹은 임신중절을 하려는 청소년의 상황이 그토록 애매하다. 청소년의 임신과 낙태를 다룬 작품이 많은 이유가 바로 이 점 때문이 아닌가 한다.
6월 16일 서울 홍대입구역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229회 독립영화 쇼케이스에서 <지우러 가는 길>이 상영됐다. 유재인 감독의 105분짜리 장편 극영화로, 발 빠른 영화쟁이들이 일찌감치 소문낸 지난해 한국 독립영화계의 화제작이다. 30회 부산국제영화제와 51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각기 신인상격인 뉴커런츠상과 넥스트링크상을 받았단 사실이 이 영화의 가능성을 짐작하게 한다. 유재인을 2025년 한국 독립영화계가 주목한 신인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각별히 아끼는 이 행사를 나는 매번 지인들을 불러 모아 함께 찾곤 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퇴근 후 빠듯한 일정을 쪼개가며 모두 다섯 명의 지인이 함께 영화를 봤다. 대체로 독립영화 쇼케이스 상영작은 평이 좋은 편이지만, 이번에는 더욱 특별했다. 보는 내내 상영관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끊이지를 않았다. 어떤 이는 극장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흔한 상업영화보다 훨씬 더 재미있다 했고, 다른 이는 이런 영화라면 마땅히 돈을 내고 보아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다. 한국독립영화협회가 더 많은 이들에게 좋은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가려 뽑은 작품인 만큼 무료상영이라해도 못한 영화란 뜻이 아니라 말해주었다.
제자 임신시키고 도망간 담임 교사?
어떤 영화라 해야 좋을까.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에서 화제작이 되었으나 아직 정식 배급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는 이 영화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간단한 줄거리소개가 필요하겠다.
주인공은 여고생 윤지(심수빈 분)다. 기숙학교 2인실을 쓰는 윤지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로부터 영화는 출발한다. 세상에, 여고생이 임신이라니. 이럴수가 싶은 얘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글쎄 학생을 임신시킨 게 무려 담임교사란다. 교사 한종성(김의황 분)은 벌써 며칠 째 출근을 않고 있다. 그러니까 임신에 대한 모든 부담을 지고 있는 건 여고생인 윤지다.
영화는 그 시작부터 윤지가 감내해야 할 일의 무게를 알게 한다. 그리고 그녀가 제 앞에 놓인 선택지 가운데 어느 것을 집어 들지를 숨죽여 바라보도록 한다. 내밀한 관계였던 종성에게 아이를 낳겠다고 우겼던 윤지가 결국 낙태를 하겠다 마음먹은 건 어떤 이유였을까.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정하면 저를 떠난 종성이 돌아오리란 기대가 결정적 이유였을 테다.
누구도 모른다. 영화가 시작되고 꽤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결코 가볍지 않은 윤지의 고민은 오롯이 윤지 혼자만의 것이다. 윤지는 학교 기숙사에 살고, 룸메이트인 경선(이지원 분)과도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니다. 종성만이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는 관계였으나, 그는 윤지를 임신시키고는 책임지지도 못한 채 어딘가로 떠나 돌아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그는 유부남이기까지 하다.
윤지는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존재다. 영화 내내 가족의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 사회적 배려 대상자로 담임의 특별한 관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그녀와 종성의 특별한 관계에 결정적 이유가 됐을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말하기를 친구도 없는 왕따라는 윤지가 혼자서 책임져야 하는 일의 무게가 가녀린 어깨 위에 너무도 무겁게 얹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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