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과 두 번이나 맞서 싸운 참군인... 진짜 '애국자'의 모습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이 싸운 무대는 전두환의 제1차 쿠데타인 12·12 쿠데타다. 장태완 이후에 전두환의 제2차 쿠데타를 막고자 했던 군인은 군수기지사령관 안종훈이다. 안종훈은 1980년 5월 17일에 전두환을 가로막았다.
1979년 12·12쿠데타는 군부 내부의 갈등에서 출발했다. 이는 전두환 국군보안사령관 겸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이 자신을 동해안경비사령관으로 좌천시키려 하는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무력화시킬 목적으로 저지른 일이다.
이에 비해 5·17 쿠데타는 전두환이 행정부를 장악하고자 벌인 일이다. 전두환은 비상계엄을 제주도까지 확대하는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를 강구했다. 이는 군부의 권한을 강화해 행정부를 제압하고, 사실상 새로운 계엄을 선포하는 효과를 만들어 국민들과 민주화세력을 억누르기 위한 일이었다.
이 같은 성격적 차이 때문에 두 쿠데타의 전개 양상은 차별성을 보였다. 이 때문에 장태완이 전두환에게 맞서는 방식과 안종훈이 전두환에게 맞서는 방식은 각각 다를 수밖에 없었다.
'계엄 확대 반대' 발언이 일으킨 파장
12·12 쿠데타 당시 군 통수권자인 최규하 대통령은 군부에 대한 영향력이 없었고, 정승화 계엄사령관은 쿠데타 개시 1시간 27분 만에 연행됐다. 군부의 갈등을 조정할 두 권위자가 힘을 잃게 된 것이 그날 상황을 유혈 충돌로 몰아간 결정적 요인이다.
이와 달리 5·17 쿠데타는 군부를 장악한 전두환이 일차적으로 행정부를 장악할 목적으로 벌인 일이다. 국민과 민주화세력을 억누르는 것은 그다음 단계였다.
전두환 측이 행정부를 제압하는 단계에서는 상호 간의 유혈 충돌이 발생할 여지가 없었다. 이때 전두환에게 중요한 것은 군부의 의견 통일이었다. 군부가 단합해 행정부를 장악하는 모양새가 그에게는 필요했다. 그래서 이 단계에서는 전두환 측이 동료 군인들에게 총구를 겨누기 힘들었다.
안종훈의 대응은 이런 구도 속에서 전두환에게 위협이 될 만한 양상으로 나타났다. 그는 군부의 의견 통일을 저지하는 데 힘썼다. 전두환이 군의 단합된 힘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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