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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제국 '가룸의 유전자'는 왜 멸종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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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제국 '가룸의 유전자'는 왜 멸종했을까

스페인 가룸은 로마 제국의 무역망 약화와 생산시설의 쇠퇴를 겪으며 1차적인 타격을 입었다. 이후 피와 내장을 불결시하는 종교적 격변, 대항해시대 이후 쏟아져 들어온 파프리카 가루(피멘톤) 등 가루 향신료의 확산이 겹치며 스페인의 식탁에서 점차 사라졌다. 그렇다면, 고대 로마 제국을 호령했던 가룸의 유전자는 멸종했을까?

가룸은 사라졌다기보다, 지역마다 변형된 형태로 흩어져 살아남았다. 스페인에서는 액체를 요리에 떨어뜨려 감칠맛을 내는 식문화 대신, 멸치의 형태를 살려낸 염장 안초비 문화가 남았다. 스페인 요리에서 액젓 특유의 깊은 우마미는 이제 타파스 바의 올리브유에 절여진 안초비 한 조각을 통해서 느낄 수 있다. 또한, 지역의 대학과 지방자치단체, 기업이 유기적으로 협력해 가룸을 복원하려는 움직임도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파편화된 유전자: 콜라투라, 피살라, 그리고 한국의 액젓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 지방에서는 '콜라투라 디 알리치(Colatura di alici)'라는 맑은 멸치 액젓으로 명맥을 이었다. 다만 고대 가룸과는 제조 방식과 맛의 방향이 달라졌다. 콜라투라는 일반적으로 손질한 멸치를 소금에 절여 발효시키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내장의 강력한 소화 효소가 빠져버렸기 때문에 고대의 액젓처럼 단백질이 제대로 분해되지 못하며, 이 때문에 통생선을 오래 발효시키는 동아시아 액젓과는 맛과 질감, 향의 방향이 다르다. 이웃한 프랑스 니스 지방에도 멸치나 정어리를 소금에 절여 만든 생선 페이스트 피살라(Pissalat) 식문화가 남아 있다. 영국의 대표 소스인 '우스터소스(Worcester sauce)' 역시 안초비를 재료로 삼는다는 점에서, 유럽 생선 감칠맛 소스의 먼 친척처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고대 로마인들이 즐겼던, 내장 효소가 단백질을 격렬하게 분해해 만든 풍부한 감칠맛의 정수 '리쿠아멘(Liquamen)'을 현대에 가장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는 식재료는 무엇일까? 발효 전문가로서 우리는 주저 없이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프리미엄 피시소스를 꼽는다.

일부 대량 생산 액젓은 높은 염도나 첨가물에 기대는 경우도 있지만, 프리미엄 액젓은 원료의 품질과 발효, 염도 관리, 높은 아미노산 함량으로 차별화를 이뤄낸다. 고대 로마 요리를 복원하거나 새로운 감칠맛을 찾는 셰프들에게, 한국의 전통 발효 액젓은 흥미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카디스 대학교와 안달루시아 주정부, 가룸을 지역의 미래 자산으로 되살리다

바엘로 클라우디아의 거대한 석조 수조(케타리아이) 앞에 서서 고대 로마의 찬란했던 액젓 산업을 눈으로 확인했을 때, 발효 전문가로서 내게 또 하나의 깊은 울림을 준 것은 이 유적을 대하는 지역 사람들의 태도였다. 이들에게 바엘로 클라우디아는 단순한 돌무더기나 관광지가 아니었다. 2000년 전의 폐허를 죽은 과거로 남겨두지 않고, 지방 정부와 지역 대학이 함께 지역 고유의 역사와 식문화를 미래 경제의 자산으로 바꾸려는 현장이었다.

안달루시아 주정부는 유적을 보존하고 전시·관람 공간으로 열어 시민과 여행자가 고대 수산 발효 산업을 직접 만날 수 있도록 했고, 카디스 대학교(UCA) 연구진은 오랜 발굴과 분석, 실험고고학을 통해 가룸의 원료와 제조 과정을 다시 읽어내고 있었다.

모래 속에 묻힌 로마 시대 공장터를 파내고, 석조 수조와 생선 뼈, 소금과 발효의 흔적과 DNA를 분석하는 일은 과거를 박물관 유리장 안에 가두는 작업이 아니었다. 사라진 맛을 되살려 지역의 식문화와 관광, 해양경제의 가능성으로 확장하려는 희망이었다.

2000년 전의 폐허를 그저 죽어 있는 돌덩어리로 남겨두지 않고, 치열한 발굴과 실험을 통해 이를 지역의 식문화 자산과 '블루 이코노미(Blue Economy)'로 되살려낸 카디스 대학교 연구진과 안달루시아 주정부의 집념은, 그 자체로 위대한 발효의 과정을 닮아 있었다. 지역의 대학이 지역의 바다와 역사, 산업을 연구하고, 지방정부가 이를 문화와 경제의 기반으로 넓혀가는 모습은 오늘날 한국에 절실한 지역균형발전의 방향과도 맞닿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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