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치매인데 멀쩡하게 생활" 100세 수녀 부검으로 밝혀진 '뇌의 비밀'
뇌가 망가지면 무조건 치매 증상이 나타날까? 의학계의 대답은 "아니다"이다. 똑같은 수준으로 뇌세포가 파괴되고 치매 독성 물질이 쌓여도, 어떤 사람은 60대부터 기억을 잃고 무너지는 반면, 어떤 사람은 80대나 100세가 넘어서까지 맑은 정신으로 완벽한 정상 생활을 해낸다. 이 극적인 갈림길을 결정짓는 무기가 바로 뇌의 근력으로 불리는 '인지예비능(Cognitive Reserve)'이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치매융합연구센터장 묵인희 교수는 CBS 경제연구실 유튜브 에 출연해 뇌의 파괴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인지예비능의 놀라운 메커니즘을 전격 공개했다.
100세 수녀 부검 충격적 결과…뇌 속 우회도로 '인지예비능'
묵 교수는 인지예비능의 효과를 증명하는 대표적 사례로 미국의 유명한 '수녀원 연구'를 소개했다. 100세가 넘도록 명석한 인지 능력을 유지하며 왕성하게 사회 활동을 하다 선종한 한 수녀의 뇌를 부검한 결과, 의학계는 충격에 빠졌다. 수녀의 뇌 속에는 이미 중증 치매 환자 수준의 베타 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생물학적으로는 이미 치매 증상이 판을 쳤어야 마땅한 뇌였지만, 수녀는 죽기 직전까지 완벽한 정상인으로 살았다. 비밀은 젊어서부터 독서, 운동,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구축해 놓은 든든한 '인지예비능'에 있었다.
신경과학적으로 인지예비능은 일종의 '뇌 속 우회도로'다. 평소 뇌를 자극하는 활동을 지속하면 신경세포 하나하나가 수많은 가지를 사방으로 뿜어내며 촘촘한 시냅스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나이가 들며 치매 독소 때문에 메인 도로 역할을 했던 특정 신경세포가 죽어 나가더라도, 인지예비능이 높은 사람은 주변 신경세포들이 가지처럼 뻗어놓은 무수한 우회도로가 그 비어버린 역할을 완벽하게 대체한다.
묵 교수는 일상에서 돈 한 푼 안 들이고 이 뇌의 근력을 키우는 5대 활동으로 규칙적인 운동, 건강한 식습관, 혈압과 콜레스테롤 등 위험인자 관리, 끝말잇기나 지하철 노선도 외우기 같은 인지 기능 훈련, 사회적 소통을 제시했다. 직접 대면 소통이 어려운 경우에는 전화를 통한 소통도 효과적이다. 아울러 스스로 인지력이 떨어졌다고 느낀다면 즉시 보건소를 찾아 간단한 MMSE(간이 정신상태 검사) 등을 통해 조기 진단을 받을 것을 강조했다.
청·장년기 이어폰과 미세먼지의 공습…란셋이 경고한 위험 요인
인지예비능을 갉아먹고 치매를 앞당기는 생애주기별 위험 요인도 명확히 차단해야 한다. 세계 최고 의학 저널 '란셋(The Lancet)'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가 평소 노력하면 고칠 수 있는 위험 인자가 대부분이다. 특히 최근 청·장년기 핵심 인자로 새로 진입한 것이 '청력 소실'이다. 무분별한 이어폰 사용으로 청력이 소실되면 뇌로 들어오는 자극이 급감해 치매 발병률이 치솟는다. 청장년기 고지혈증 역시 약물과 식단으로 반드시 통제해야 할 요소다.
노년기 위험 인자인 '미세먼지' 역시 뇌를 직접 공격한다. 실제 미세먼지 박스 안에서 쥐를 사육한 실험 결과, 미세먼지에 노출된 쥐들은 행동 패턴이 둔화되고 인지 기능이 현저히 떨어졌다. 미세먼지가 뇌 신경 전달의 핵심인 '시냅스 가소성'을 심각하게 저하시키기 때문이다. 묵 교수는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노년기 뿐만 아니라 전 연령층이 마스크를 써서 뇌의 최전방 방어벽을 지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치매를 위한 국가적인 노력, TRR 연구와 치매 안심 공동체의 힘
국가 국책 기관인 '치매극복연구개발사업단'의 단장을 맡고 있는 묵 교수는 최근 혁신적 조기 진단 기술 상용화와 차세대 원인 치료제 임상 현황을 발표했다. 특히 사업단이 심혈을 기울이는 'TRR(임상시험 준비 환자 등록부)' 연구는 현재 800명 규모의 환자 데이터를 2년 주기로 추적 조사하고 있다. 생활 방식과 유전학을 종합 분석해 "왜 어떤 환자는 치매 독소가 가득해도 인지 기능이 정상적으로 유지되는가"에 대한 정밀 의학의 답을 내놓기 위함이다.
더불어 묵 교수는 환자가 고립되지 않고 실생활을 영위하는 공동체 모델이 강력한 사회적 방어벽이 된다고 강조했다. 환자가 직접 장을 보고 요리하는 네덜란드의 '호그벡 마을'이나, 노인들이 함께 모여 수놓기와 음악 활동을 공유해 발병률을 현저히 낮춘 대한민국 제주도의 치매 안심 공동체 모델이 그 증거다. 묵 교수는 소멸해 가는 지방에 이러한 청장년-노년 상생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치매는 뇌가 망가진다고 해서 무력하게 무너져야 하는 절망의 질병이 아니다. 질환의 실체를 명확히 인지하고 능동적인 뇌 자극 활동을 실천하는 개인의 노력에 국가 차원의 연구와 치매 안심 공동체 등의 인프라가 더해진다면, 초고령 사회에서도 치매라는 공포를 이겨내고 진정한 '치매 해방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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