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은 약사에게, 달리기는 런약사에게…'성지' 된 약국
"안녕하세요. 약은 잘 챙겨 드시고 계시죠?"
'런약사' 정보라 고수(高手)는 서울 여의도 거리를 마음 편히 지나다니기 어렵다. 횡단보도 앞에서도, 아파트 단지 골목에서도, 편의점 앞에서도 누군가 먼저 인사를 건네기 때문이다.
정 고수 역시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환자들과 짧은 안부 인사가 오가고, 간단한 건강 이야기가 이어진다.
러너에게는 '러닝 전문 약사'이고, 동네 주민에게는 믿고 찾는 단골 약사다. 집으로 돌아가면 아내이자 세 남매의 엄마가 되고, 새벽이 되면 누구보다 먼저 러닝화를 신는 러너가 된다.
'페이스메이커'는 정 고수와 함께 달린 뒤, 또 다른 터전인 약국으로 향했다.
'러닝 인터뷰'를 마치고 약국으로 향하는 길.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정 고수는 몇 차례나 걸음을 멈췄다. 오랫동안 약국을 찾았던 환자들이 인사를 건넸기 때문이다.
2019년 문을 연 정 고수의 약국은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인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단순히 약만 사러 오는 곳이 아니다. 몸 상태를 이야기하고 안부를 묻는 동네 사랑방 같은 공간이 됐다.
"길을 가다가 마주치면 '또 뛰러 가냐'고 물어보세요. 환자분들이 다 가족 같아요. 어떤 약을 드시는지 아니까 상태는 좀 어떠신지 먼저 여쭤보게 되더라고요."
약국 문이 열리기 한참 전부터 정 고수의 하루는 시작된다. 단연 러닝으로 하루를 연다. 새벽 4시면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뛰기 시작한다.
운동을 마치면 곧장 엄마의 시간이 시작된다. 고등학생인 첫째 딸 등교를 위해 아침상을 차리고, 집안일을 한다. 그러면 아들들이 기상한다. 두 아들 학교까지 보내고 나면 그제야 약국으로 향해 흰 가운을 입는다.
퇴근 후 밤이 되면 일찍 잠자리에 눕는다. 다음 날 새벽에도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요? 저는 그냥 이 시대를 살아가는 40대 세 남매 엄마예요. 그래도 틈틈이 복근 운동이나 요가, 스트레칭 같은 보강 운동을 해요. 저녁에는 최대한 빨리 자려고 해요. 내일 또 뛰어야 하니까요."
여기에 '유튜버로서의 삶'까지 더해진다.
정 고수는 러닝 영상을 만들 때 단순 정보 전달보다 자신의 경험을 담으려고 노력한다.
"제 개성을 드러내려고 노력해요. 제가 뛰며 느끼는 것들, 생각했던 것들을 주제로 잡아요. 구독자분들이 그런 면에서 공감하며 재밌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그 영향일까. 정 고수의 약국은 '러너들의 약국'이라 불릴 정도로 유명한 장소가 됐다. 약국을 찾은 러너들은 약 상담보다 먼저 마라톤 이야기를 꺼낸다.
"하루에도 몇 분씩 꼭 오세요. 영양제 상담도 하고 에너지젤도 추천해 드리고요. 달리기 이야기 시작하면 시간이 정말 금방 갑니다."
러너를 위해 추천해 줄 만한 영양제는 뭐가 있을까. 인터뷰 도중 기자를 바라보던 정 고수는 금세 약사의 눈으로 바뀌었다.
"기자님처럼 빠르게 뛰시고, 근육량이 많아 보이시는 분들은 전해질이나 마그네슘을 보충하면 확실히 도움이 될 겁니다."
연령과 목적에 따라 필요한 영양소도 차근차근 설명했다.
"50대 이상이신 분들은 대사가 잘 안되는 경우가 있어요. 이런 분들에게는 비타민B군이 필요해요."
"창백해 보이시는 분들은 철분이 부족한 경우가 있어요."
"혈압이 있는 분들, 심박수가 너무 높으신 분들께는 아르기닌을 제안 드려요. 혈관이 확장되면서 효과를 보는 경우가 있죠."
"풀코스나 트레일러닝을 준비하는 러너라면 포도당, 전해질을 추천해 드려요. 다만 제품 브랜드가 여러 가지라서, 증상을 여쭤보고 적합한 영양제를 추천드리고 있어요."
최근 러너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도 소개했다. 바로 '에너지젤'이다.
"사실 빠르게 속도를 내지 않는 분들은 에너지젤을 안 드셔도 돼요. 또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달리시는 분들에게도 추천드리지 않아요. 몸에 있는 지방을 꺼내 써야 하니까, 몸을 더 움직이는 게 오히려 낫죠."
배가 자주 아픈 러너에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뛸 때 배가 아프신 분들은 너무 진하거나 단맛이 강한 에너지젤보다 묽은 제품이 나아요. 여러 종류를 훈련할 때 드셔보시고 제대로 효과를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대회 전날 식단도 원칙은 단순했다.
"당연히 자극적인 음식은 안 먹어야 해요. 저는 탄수화물을 먹어요. 단백질류는 속이 안 좋아질 수 있어요. 특히 여름에는 땀을 많이 흘리게 되니까, 아침에 전해질을 마셔요. 커피를 마시면 수분이 체내에서 많이 빠져나가니까, 채울 수 있는 전해질 음료를 달리기 전후로 먹는 게 좋죠."
약사는 약으로 사람들의 건강을 돌본다. 하지만 정 고수가 가장 권하고 싶은 처방은 '약'이 아니다.
"저는 약사지만 약을 많이 권하지 않아요. 비싼 약들이 꼭 몸을 위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잠시 말을 멈춘 정 고수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약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결국 건강은 생활 습관이 만들어요. 달리기를 통해 건강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가장 오래가는 건강을 만들 수 있다고 믿어요. 약이 전부라는 생각을 접어두시고, 달리기도 같이 하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건강하게 약을 쓰고 달리기를 전파하는 약사가 되고 싶어요."
정 고수는 오늘도 약국 안에서 흰 가운을 입고 사람들의 건강을 돌본다. 약국 밖에서는 러닝화를 신고 건강한 삶을 전한다.
'런약사' 정 고수에게 가장 오래 효과가 지속되는 처방은, 오늘도 변함없이 한 켤레의 러닝화다.
"제 지역에 있는 주민들이 건강한 삶을 사시는 것만큼 보람찬 일은 없을 겁니다. 시간이 더 지났을 때 주민분들께서 '거기에 그런 약국 있었지' 정도로만 기억해 주셔도 저는 되게 행복할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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