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를 떠난 사람들... 애니로 만난 '김초엽의 세계'
'소피'는 사막 행성의 '마을'에서 사는 소녀다. 척박한 풍경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마을은 화목하고 기본적인 의식주엔 불편함이 없다. 주민들은 서로 우애롭고 화목하게 지낸다. 그런데 이곳에는 특이한 풍습이 있다. 18살이 되면 '시초지'라 불리는 주민들의 기원, 지구로 순례를 떠나 1년간 지내다 돌아오는 규칙이다. 하지만 순례자 중 일부는 1년 후에도 돌아오지 않는다. 슬픔이나 고통을 찾을 수 없는 '마을'로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소피는 궁금해진다.
완벽한 세계에 가리워진 이면, 진실은 무엇일까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속 '마을'은 유토피아에 가깝다. 여기엔 빈부의 격차나 성별, 종교 등에 의한 차별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조금만 유심히 살펴보면 소피가 다니는 학교의 교육 내용이 유별나긴 하다. 이들은 자신들이 유래한 지구의 환경을 재연하는 테라리움을 만들거나, 인간의 오욕칠정을 고전 문학 수업에서 배운다. 완전히 독립된 외계 행성에서 자급자족 생태계를 유지하는데 굳이 '시초지'를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이곳에서 성인식이라 할 관습은 지구로의 1년간 순례다. 딱히 마을의 삶과 별 연관도 없는데 굳이 짧지 않은 기간 머물러야 하는 취지가 뭘까? 성년이 안 된 소피는 궁금하지만, '귀환자'들은 침묵 서약을 했는지 시초지에서 보낸 시간에 대해선 말을 아낀다. 어떤 귀환자는 돌아온 후 칩거하며 슬픔에 잠긴다. 공식적으론 존재하지 않지만, 은연중에 돌아오지 않는 순례자에 대한 소문이 떠돈다. 완벽한 세계로 돌아오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소피에겐 늘 착용하고 다니는 목걸이가 있다. 몸의 일부 같던 목걸이에서 갑자기 메시지가 들린다. 알고보니 소형 무전기 역할을 하는 장비다. '데이지'라 자신을 소개한 목소리는 소피를 잘 알고 있지만, 소피는 상대를 기억하지 못한다. 데이지는 뜻 모를 말을 거듭하며 자신은 지금 시초지에 와 있음을 밝힌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몰래 귀환선에 타 지구에 도착했고, 자신보다 먼저 도전한 '올리브'를 찾는 중이란 것.
데이지의 말이 영 미심쩍지만, 소피는 그녀가 들려준 충격적 진실을 탐문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공식적으론 존재하지 않는 미귀환자가 실제로 있다는 것, 마을의 건설자로 추앙되는 '릴리 다우드나'의 행적에 관해 알게 된다. 그동안의 안정된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 정도로 그 내용은 당혹스럽기만 하다. 한편 기대와는 너무 달랐던 디스토피아 지구를 겪으며 위험에 여러 번 빠졌던 데이지는 마침내 올리브와 만나 세계의 비밀에 관해 깨닫는다.
한국 SF 문학의 콘텐츠 확장 도전기
영화는 한국 SF문학 붐을 불러온 주역 중 하나인 김초엽 작가의 대표 단편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중 첫 꼭지를 장식한 동명의 단편을 원작으로 삼았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기대를 모으며 이미 여러 편이 영상화 시도중인 작가의 작업 중 공식 첫 번째 영화로 선보인 본 작품의 성패는 국내 영상 콘텐츠 향후 전망과 연결되는 지점이다. 아직 주변부에 머무는 SF 장르 활성화와도 밀접하게 연관된 여러모로 주목할 만한 시도다.
마이너에 머물던 한국 SF 문학이 부흥한 배경에는 서구권 하드 SF와 비교하면 페미니즘이나 생태주의 조류와 연동한 상상력 극대화를 빼놓을 수 없다. 현실에선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다양한 대안 사회 희망이나, 일상에서 겪는 사회적, 실존적 고민을 마음껏 해부할 수 있는 특권은 해당 장르문학이 시초부터 누려온 이점이다. 미래사회 혹은 평행세계(우주)를 무대로 펼치는 상상력의 향연은 현실에 만족할 수 없는 이들에겐 작은 해방구로 기능하는 덕분이다.
작가의 작품 중에도 가장 잘 알려진 단편을 각색한 만큼 영화 역시 김초엽 월드의 대표적 특징을 고스란히 갈무리한다. '마을'은 현실에서 구현하고픈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의 정석처럼 묘사된다. 자매애로 굳건하게 서로를 배려하고 격려하는 문화가 정착한 이곳에는 가난이나 질병, 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여기서 다들 행복하게 살면 충분하다. 동서고금 사람들이 꿈꾸던 무릉도원, 샹그릴라가 여기 있다.
반면, 그들이 기원한 '시초지', 지구는 거의 대비된다고 봐도 좋을 풍경이다. 유전자 교배가 일상화한 지구는 우성인자로 디자인된 이들이 사는 밝고 환한 구역 VS. 유전자 조작을 거치지 않은 열등한 사람들의 슬럼가로 철저히 나뉜다. 지구를 방랑하던 데이지는 후자 구역에선 위험에 처하고 전자 구역에선 차별과 멸시에 쫓긴다. 우등 인류 구역은 환하고 밝으며 모든 게 풍족하지만, '마을'과 달리 차가운 인심과 인공적 환경으로 채워진다. 영 구미에 맞지 않다.
구시대의 분리장벽이 유전자 조작으로 부활한 미래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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