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 사랑방의 기억, 그리고 정유정이 건넨 '사흘'

짧게 끊어지는 절제된 문장, 극도로 자제된 부사, 그리고 거의 쓰이지 않은 접속사. 정유정 작가의 소설 <진이, 지니>(2019년 5월 출간)는 군더더기 없는 독보적인 문체와 압도적인 속도감으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13시간이 넘는 오디오북을 듣는 내내 단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손길 속에서도, 반려견과 함께 나선 산책길에서도 귀에서 이어폰을 뺄 수 없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독자의 시선을 단단히 붙들어 맨 채 놓아주지 않았다.
인간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온순한 영장류 '보노보'. 동물학자들의 철저한 검증과 수많은 관련 서적을 탐독 하며 쌓아 올린 이 정교한 이야기는, 뼈를 깎는 지옥 같은 집필 과정과 작가 특유의 직관적 섬광이 만났을 때 어떤 울림을 주는지 명확히 증명해 보인다.
"그녀는 내게 삶이 죽음의 반대말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삶은 유예된 죽음이라는 진실을 일깨웠다." (본문 367p 중)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만난 두 영혼
소설은 유인원 책임사육사 진이가 침팬지 구조 요청을 받고 이동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난 동물은 침팬지가 아닌, 겁에 질린 채 나무 꼭대기에 매달려 있던 보노보였다. 구조 과정에서 마취 총에 맞은 보노보를 품에 안고 돌아오던 길, 갑작스런 교통사고와 함께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사육사 진이의 영혼이 보노보 '지니'의 몸속으로 들어가버린 것이다.
두 개의 영혼이 교차하는 혼돈 속에서 진이는 자신의 몸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리고 지니에게 온전한 삶을 돌려주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 무모하고 절박한 여정에 우연히 함께하게 된 인물이 바로 서른 살 청년 민주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했던 민주는 진이(지니)와 거래를 맺고 동행하며 점차 타인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진짜 '인간'으로 성장해 나간다.
단 사흘이라는 허락된 시간 동안, 둘은 '죽음의 의미'와 '삶의 의미'를 향해 전력 질주한다. 정유정 작가는 인간과 비인간, 삶과 죽음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절박한 선택을 통해 발현되는 인간의 자유 의지가 어떻게 죽음의 두려움을 삶의 희망으로 바꾸어 놓는지를 특유의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해 낸다.
"미야, 나도 인제 우리 엄마한테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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