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삶 원했던 최민식의 몰락, '맨 끝줄 소년'이 던진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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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믿지 못하는 사람은 어디에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 할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얻고 싶어 한다. 그 확신은 통장 속 액수나 집 평수, 혹은 타인의 인정을 통해 확인된다. 스스로의 가치에 대한 확인은 필연적으로 결핍을 동반한다.
넷플릭스 시리즈 <맨 끝줄 소년>은 결핍을 채우기 위한 과정이 한 사람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매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소비한다. 드라마를 정주행하고, 웹툰의 다음 화를 기다리며, 예고편을 돌려보며 다음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인간의 욕망이다.
욕망의 대리 실현은 언제나 대가를 요구한다
6월 26일 공개된 <맨끝줄 소년>의 주인공 허문오(최민식 분) 역시 다르지 않다. 첫 소설 이후 두 번째 작품을 완성하지 못한 '실패한 소설가'이자 명문대 국문과 교수인 그는 자신의 수업을 듣는 학생 이강(최현욱 분)의 과제에서 오랜만에 살아 있는 이야기를 발견한다. 처음에는 단지 재능이 보이는 학생의 과제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강의 과제 속 이야기가 허문오의 대학 동기이자 성공한 소설가 김수훈과 연결되는 순간, 이강의 글은 다른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허문오에게 이강의 과제는 흥미로운 스토리를 넘어 평범한 자신이 김수훈이 누리고 있는 '특별한 삶'에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된다. 과제 속에서 김수훈이 비열한 인물로 그려질 때 통쾌함을 느끼고, 그의 몰락을 간절히 바라는 최문오의 안달난 모습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부러움의 대상이 무너지기를 바라는 감정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그 바람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타인의 삶을 이용하기 시작하는 순간 ,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 드라마 속에서 반복해 언급되는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처럼, 욕망의 대리 실현은 언제나 대가를 요구한다.
허문오는 이강의 과제, 그리고 과제를 넘어 그의 삶까지 통제하려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과제속 스토리를 통제하려던 허문오는 오히려 이강에게 휘둘린다. 이강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이기 위해 동료 교수의 컴퓨터에서 시험 문제를 빼돌리려 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좋은 작품을 쓰는 방법을 가르치는 교수가 아니라 작품 속 등장인물이 된다. 작품을 통제하려던 사람이 오히려 그 서사의 객체가 된 것이다. 결국 현실과 이야기를 구분하던 경계는 무너지고, 허문오는 자신의 욕망조차 실현하지 못한 채 자신의 평범한 삶을 지탱하던 것들을 하나씩 잃어 간다.
자기 삶의 중심을 타인의 인정에 의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허문오는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 <모두가 자기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속 인물, 박경세를 떠올리게 한다. 두 인물의 차이는 한 편의 이야기를 완성해나가는 '완주' 경험의 차이에 있다.
허문오는 '한 번' 완주했을 뿐, 두 번째 완주를 몇 십년 째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박경세는 '첫 작품이 가장 재미있었던 감독'이라는 꼬리표를 달고도 부인이자 제작사 대표인 고혜진의 정서적·현실적 지지를 바탕으로 흔들리는 자신을 인정하고 관계를 지켜 나가며 조금씩 자신을 회복한다. 반면 허문오는 타인의 재능과 삶에 자신의 인생을 걸면서 점점 자신을 잃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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