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공장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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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연대, 머리띠를 둘러맨 투쟁의 현장을 떠올릴 때, 대개 떠오르는 것은 붉은 분노의 이미지다. 확성기를 타고 흐르는 날 선 구호들, 굳게 다문 입술, 타협 없는 외침. 노동조합의 파업은 내게 늘 한 발짝 떨어진 곳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매일 스쳐 지나가는 뉴스 화면처럼, 그저 세상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일일 뿐이었다.
그러던 지난 18일 저녁, 노동자의 인권에 관심이 많은 친구를 따라 우연히 책 <공장이 사라지고 남은 얼굴들>의 저자 희음의 북토크에 참여하게 됐다. 이 책은 일본의 거대 자동차 부품 기업 덴소(DENSO) 그룹의 투자로 설립된 한국와이퍼(안산 반월공단)가 일방적으로 청산과 해고를 통보하자, 이에 맞선 209명의 노동자들이 함께 만들어낸 투쟁과 돌봄, 그리고 연대의 기록을 담고 있다.
이 책과 북토크를 통해 나는, 기존의 문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언어의 투쟁을 목격했다. 그것은 어쩌면 뜬금없는 감정, 투쟁과는 멀어 보이는 부조화의 언어, '사랑'이었다.
밥을 짓고 안부를 묻는, 거룩한 '살림의 투쟁'
"나 혼자 잘 살겠다는 게 아니라 같이 잘 살겠다는 의미... 한 사람을 위한 싸움 같지만 사실은 주변 사람을 위한 싸움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필연적으로 '살리는 일', 즉 '살림의 투쟁'일 수밖에 없습니다." (기록자 희음)
한국와이퍼 노동자의 다수는 오랜 세월 생산라인을 지켜온 중년 여성들이었다. 일방적인 공장 청산이라는 벼랑 끝에 내몰린 이들이 1년 넘게 청산 철회와 고용 보장을 위한 투쟁을 이어갈 수 있었던 힘은 거창한 이념이나 영웅적 희생에서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를 돌보는 일상의 감각에서 비롯됐다.
그 돌봄은 가장 먼저 밥상 위에서 드러났다. 점거 투쟁 현장은 뜻밖에도 '먹는 이야기'로 가득했다. 새벽 공기를 뚫고 나와 서로를 위해 밥을 짓고, 공장 문밖의 이웃들은 끊임없이 음식을 보내왔다. 고립과 불안이 일상이 된 상황에서 따뜻한 밥 한 끼는 서로의 무너지는 마음을 붙잡아주는 가장 강력한 버팀목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오늘 컨디션은 어때?", "어디 아픈 곳은 없어?"라며 끊임없이 안위를 물었다. 집안의 불을 밝히고 가족을 먹여 살리던 '살림'의 감각이 거친 투쟁의 현장에서 고스란히 재현된 것이다. 그 지극한 돌봄이 있었기에 벼랑 끝에 선 조합원들의 얼굴에는 늘 에너지가 넘쳤고, 고난 속에서도 온기가 흘렀다.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불가능했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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