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 4년... 정묘호란 의병장 정봉수, 600쪽 소설로 부활하다

'지식인은 권력이나 관습에 의해 은폐된 사실을 폭로하고, 왜곡되거나 명확하지 않은 것을 과학적·비판적 분석을 통해 밝혀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을 논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정의한 지식인의 역할과 임무에 관한 명언으로, 그의 책 <맞불>(Contre-feux)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광희 장편소설 <항복하지 않은 성>(도서출판 청어, 2006.4.)이야말로 이러한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을 다한 책이라 볼 수 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에 비해 덜 알려진 정묘호란을 배경으로 하고, 왕이나 후세에 이름을 떨친 유명한 장군도 아닌 이름 없이 사라져간 의병들 이야기를 다루었기 때문이다.
조선이 여진족 후금(뒤에 청)과 벌인 두 번의 전쟁. 그 중 첫 번째가 정묘호란이다. 두 번째 병자호란과는 달리 소설, 영화 등에서 많이 다루어지지 않은 전쟁이다. 그 이유는 병자호란 당시의 주화파와 척화파의 대립, 남한산성 전투, 삼전도 치욕 같은 극적인 요소가 없어서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떨쳐 일어났고 이름도 없이 산화한 의병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크다. 이 땅을 지켜 온 게 왕을 비롯한 지배 계층이 아닌 이름 없는 백성이라는 사실을 선명하게 각인한 점, 박수 받을 만하다. 작가 이광희는 책 들머리에서 "이 책을, 이름 없이 사라진 이 땅의 사람들에게 바친다. 그들의 삶이 곧 역사였음을 기억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이 책의 주인공 정봉수는 실존 인물이지만 이순신, 권율처럼 유명한 장군은 아니다. 역사에서 잊힌 영웅일 뿐이다. 1592년(선조 25)에 무과에 급제해 임진왜란 때 선전관으로 왕 선조를 호종했고 나중에 영산 현감 등을 역임했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자 의병을 모아 용골산성을 지켰다. 후금의 거센 공격을 막아내며 포로가 되었던 수천 명의 조선인을 구출하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 책은 정봉수가 의병을 모아 용골산성에서 후금군과 사투를 벌인 기록이다. 후금의 압박에 굴복해 용골산성을 비우라고 한 인조의 명령에 따라 결국 산성을 내주기는 했지만, 누가 뭐래도 승리의 기록이다. 끝까지 항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 제목이 <항복하지 않은 성>인 이유다.
"죽음을 각오한 의병들 저항에 적들은 감히 다가서지 못했다"
정봉수가 눈물을 머금고 성을 버리는 대목에서 소설이 시작된다. 그 뒤 젊은 무관 시절 정봉수의 활약상이 펼쳐지는데 무협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칼 싸움 장면도 있다. 이어 용골산성에 들어가 후금에 투항한 뒤 백성들 고혈을 짜는 성주 장사준을 몰아내고 의병장으로 우뚝 서는 과정이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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