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치료하는 병원이 다시 질병 만든다"...탈탄소 의료시대 열린다

"미래환경대응전문위원회는 미래의 환경변화 속에서도 의료체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방향을 고민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직면한 미래환경 변화는 초고령사회와 인구구조 변화, 기후변화와 감염병 대유행, 그리고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 발전입니다."
국무총리 소관 의료혁신위원회 산하 미래환경대응전문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김진현 위원장의 생각은 현재 의료개혁 논의보다 훨씬 먼 미래를 향해 있다. 의과대학 정원이나 필수의료처럼 당장 눈앞의 현안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후위기와 에너지 안보, AI, 초고령사회, 건강보험 재정까지 동시에 준비하지 않으면 우리 의료체계의 지속가능성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다.
서울대 간호대학 교수인 김 위원장은 보건경제학과 간호정책 분야를 대표하는 전문가다. 경제학과 보건학을 아우르는 융합적 연구를 바탕으로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 확보, 지불제도 개편, 공공의료 강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 등을 꾸준히 제안해 왔다.
미래환경대응전문위원회는 의료혁신위원회 내에서도 가장 폭넓은 중장기 과제를 다루는 조직이다. 지역필수공공의료전문위원회나 초고령사회전문위원회가 각각 정책 영역을 담당한다면, 미래환경대응전문위원회는 의료체계 전반의 지속가능성을 설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18명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보건의료 재정과 인력, AI 전환, 기후위기 대응, 의료 거버넌스 등 미래 의제를 논의한다.
지난 8일부터 전화와 문자, 서면 질의응답을 주고받으며 진행한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은 미래 의료를 준비하기 위한 네 가지 핵심으로 ▲지속가능한 국민의료비 관리체계 ▲보건의료 재정과 인력 등 정책 거버넌스(민관협치) 확립 ▲보건의료 AI·디지털 전환 ▲기후변화와 팬데믹 대응체계 구축을 제시했다.
"질병을 치료하는 병원이 다시 질병을 만든다"
김 위원장이 가장 강조한 미래 의제는 의외로 '탈탄소 의료'였다. 그는 의료기관을 "24시간 운영되는 의료기기와 공조설비에 의존하는 대표적인 에너지 다소비 시설"이라고 규정했다. 최근 중동 정세 불안으로 에너지 공급망 취약성이 드러난 상황에서 의료기관 역시 에너지 안보와 기후위기를 함께 고려하는 새로운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미래환경대응전문위원회가 지난 5월 정부에 제출한 '보건의료기관 탈탄소화 권고안'으로 이어졌다. 권고안은 ▲기후 대응 총괄 추진체계 구축과 전담 재원 마련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 ▲에너지 효율화 ▲의료 인프라(기반시설) 개선 ▲저탄소 임상 혁신 ▲취약계층 보호 등 6대 이행과제를 담고 있다.
김 위원장은 "권고안은 기후위기와 에너지 안보 위협에 대응해 중장기적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지속가능한 보건의료체계 로드맵(이행안)을 제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기후변화 대응 역시 의료기관의 전기요금을 줄이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는 의료기관의 에너지를 줄이는 것을 넘어 기후위기로 인한 건강 피해 관리까지 함께 논의해야 합니다. 특히 피해는 고령자와 저소득층, 장애인 등 취약계층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 취약계층 보호를 함께 아우르는 관리 체계가 필요합니다."
김 위원장은 의료 분야의 탄소 배출 실태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의료기관 자체의 에너지 소비는 물론 의약품과 의료기기 생산, 환자와 직원 이동, 급식 조달, 의료폐기물 처리 등 공급망 전체를 포함하면 보건의료 분야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4.2~4.4%를 차지하는 주요 배출원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를 "'질병을 치료하는 의료기관이 막대한 탄소를 배출해 다시 질병을 유발하는' 보건의료의 역설(Paradox of Health Care)"이라고 표현했다. 의료가 역설적으로 기후위기를 심화시키는 산업이란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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