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사랑하다 호랑이가 된 처녀, 여기 그 '증거'가 있다

세상은 언제나 상대적이다. 상대적인 것이 꼭 반대, 경쟁, 적대적인 것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때론 보완적이고 발전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도 있다. 이를 동양에서는 음양으로 말하고 오행의 상생상극을 통해 표현하기도 한다.
그동안 호랑이의 상대를 통해 호랑이의 다양한 모습을 알아보았다. 종교적 권위와 불법의 수호자인 사자를 통해 현실 권력과 실질적인 산군의 위상을, 상상의 산물과 물의 상징인 용 앞에서 대지의 수호자로, 민중과 약자의 지혜 토끼를 통해서는 힘을 가진 강자와 부패한 권력 측면의 호랑이를 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까치와의 상대를 통해 또 다른 호랑이를 만나보려고 한다.
호랑이와 까치 그림을 호작도(虎雀圖)라고 하는데, 최근 공전의 히트를 쳤던 넷플릭스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애니메이션 영화 속의 호랑이와 까치의 모티브가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보통 민화로 많이 그려졌고 박물관 전시품으로 널리 소개되고 있는데 이번 탐방은 사찰벽화 속의 호랑이를 찾아볼 요량으로 지난 6월 8일에 경남 양산 통도사를 방문했다.
이번 여정은 얄궂게도 비와 함께 해야 했다. 수려한 산세와 풍광으로 영남의 알프스라고 불리는 영축산의 면모를 볼 수 없어 아쉽기만 했다. 산세가 자욱한 안갯속으로 사라지자 빼곡히 들어찬 통도사의 건물들이 오히려 도드라지는 게 아닌가.
한국의 산지 승원인 산사 7개소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독특한 자산이다. 여기에 통도사가 포함된 것은 당연하다. 영축산을 배경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불보사찰이기도 하지만 사찰벽화의 살아있는 박물관이자 보고(寶庫)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이야 주변이 개발되고 정비되어 그렇지 위치한 자리가 깊고 깊은 산중이라는 사실이 핵심 포인트다. 이곳은 필연적으로 호랑이와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찰 중에서 호랑이 관련 유물이 가장 많지 않을까 싶다. 그 첫 번째 유물을 찾아보았다.
산내암자인 백운암에는 '통도사 스님을 사모한 처녀'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전설은 '마을의 한 처자가 나물을 캐러 갔다가 길을 잃고 백운암에 오게 된다. 이곳에는 젊고 잘 생긴 스님이 강백(講伯)이 되려고 열심히 공부했는데, 경전을 읽는 모습에 반해 아가씨는 그만 짝사랑에 빠지고 급기야 병까지 걸리게 된다. 이에 아가씨 부모는 스님을 찾아가 딸과 결혼해 달라고 애원했지만 스님은 끝내 거절하고 결국 강백의 자리를 오른다. 반면, 아가씨는 한을 품은 채 죽어 호랑이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그리고 스님이 강백이 되어 많은 대중들에게 첫 강의하는 날, 호랑이가 나타나 스님을 낚아채 사라졌다'는 내용이다.
유난히 붉어 섬뜩한 느낌도
그런데 이 전설과 관련된 유물이 실존하고 있어 흥미롭다. 바로 호혈석(虎穴石)이라는 붉은 돌판이 그것이다. 스님이 사라지고 호랑이의 혈기를 누르기 위해 경내에 설치했다고 한다. 보통 통도사는 3개 구역으로 나뉘는데,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이라고 한다. 현재 이 호혈석은 바로 하로전 극락보전과 상로전 응진전 좌측에 위치하고 있었다.
극락보전의 호혈석은 두 개의 돌판으로 되어 있었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유난히 붉어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호혈석은 응진전의 것을 거론한다. 장방형의 널찍한 반석으로 가운데 길게 마치 붉은 혈흔이 흐른 것 같이 구성되어 있어 신기했다.
통도사에서 두 번째로 찾아볼 호랑이는 불이문(不二門)에 있었다. 불이는 너와 나, 생과 사, 선과 악 같은 상대적 대립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분별을 넘어선 하나의 경지를 말한다. 이 문 천장 가운데 기둥보를 장식한 조각에 한쪽은 코끼리가, 또 한쪽에는 호랑이가 있지 않은가. 이는 완전 파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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