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 판타지, 정치적 풍자 뒤섞인 '블러드 카운테스'

영화 <블러드 카운테스>는 독일의 거장 울리케 오팅거(Ulrike Ottinger)가 연출하고, 프랑스의 명배우 이자벨 위페르(Isabelle Huppert)가 주연을 맡았다. 전설적인 흡혈귀 귀족 엘리자베트 바토리(Erzsébet Báthory)를 현대의 비엔나(Vienna)로 소환한, 기괴하고 화려한 고딕 판타지 영화로 30회를 맞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영화는 수백 년의 잠에서 깨어난 '블러드 카운테스'가 잃어버린 생명의 붉은 비밀을 찾아 비엔나 시내를 떠도는 여정을 그린다. 하지만 전통적인 뱀파이어 호러를 기대했다면 다소 당황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공포영화라기보다 캠프(camp) 코미디, 초현실주의 판타지, 정치적 풍자가 뒤섞인 예술영화에 가깝다.
<블러드 카운테스>는 이자벨 위페르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화면을 장악하는 영화다. 그녀가 연기하는 블러드 카운테스는 무섭다기보다 우아하고 냉소적이며, 세상 모든 것에 권태를 느끼는 귀족적 괴물로, 위페르는 붉은 망토와 창백한 얼굴의 카리스마로 화면을 장악한다.
영화는 비엔나의 고풍스러운 공간들을 무대로 고딕 미술관 같은 이미지를 펼쳐낸다. 붉은색과 검은색이 지배하는 화면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바로크 회화를 보는 듯하며, 황홀한 미장센으로 이야기하기 보다 이미지와 분위기를 중시하는 오팅거 감독 특유의 스타일이 극대화된다.
영화는 흡혈귀 신화를 진지하게 다루기보다 조롱하고 비틀고, 뱀파이어 사냥꾼, 정신과 의사, 괴짜 친척 등 온갖 인물들이 등장해 황당한 상황극을 만들어내는, 뱀파이어 장르의 유쾌한 해체로 장르 팬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준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줄거리의 인과관계보다 장면과 분위기를 우선하기 때문에 서사가 느슨해, 일반 관객은 "대체 무슨 이야기지?"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며, 실제로 해외 리뷰에서도 "줄거리보다는 기묘한 에피소드의 연속"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블러드 카운테스>는 피와 공포보다 스타일과 풍자, 그리고 이자벨 위페르라는 배우의 존재감으로 승부하는 영화로, 전통적인 공포영화나 상업영화를 기대한 관객에게는 지나치게 난해할 수 있다.
반면 오팅거의 실험적인 영화 세계를 좋아하는 관객에게는 큰 선물이 될 작품으로, 서사적 완성도보다는 시각적 황홀경과 기괴한 유머를 즐기는 관객에게 추천할 만한 호불호가 강한 예술영화다.
이자벨 위페르(Isabelle Huppert)는 1953년 3월16일, 프랑스 파리에서 출생, 1971년에 데뷰해 50년이 넘는 연기 활동을 펼쳤다. 120편이 넘는 영화와 연극 무대에서 활약하며 유럽 예술영화의 상징적인 존재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배우이자 세계 영화사에서 가장 위대한 연기파 배우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이자벨 위페르는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2회 수상 '비올레트 노지에르', '피아니스트'로 여우주연상을 2회 수상했으며, 베니스국제영화제 볼피컵 여우주연상 2회, 세자르상 여우주연상을 2회(최다 후보 기록 보유) 수상, 영화 <엘르(Elle)>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다.
이자벨 위페르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는 '절제'다. 그녀는 감정을 폭발시키기보다 눈빛, 미세한 표정 변화, 짧은 호흡만으로 인물의 내면을 드러낸다. 그래서 처음에는 차갑고 무표정하게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물의 불안과 욕망이 관객에게 서서히 스며드는 독특한 힘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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