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중동에는 소사간이학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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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대한제국이 일제에 강제병합된 후 우리 선조들의 삶은 단순히 식민지배를 받으며 식량수탈만 당한 게 아니었다. 정치사회적 자유 뿐만아니라 제대로 교육을 받을 권리 또한 빼앗겼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부터 우리 민족은 자녀들의 교육을 매우 중요시하였다. 인간의 본성을 깨닫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배움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00여년 전 부천의 교육은 어떠하였을까? 일제에 의해 펼쳐진 교육 정책에 대해 살펴보고 특히 공립보통학교와 함께 초등교육기관으로써 교육을 담당했던 소사간이학교에 대해 알아보고자한다.
부천지역 교육기관의 설립과 운영
일제강점기 부천(현재 부천시 관내)에는 총3개의 교육기관이 있었다. 일본인 자녀의 교육을 담당했던 소사심상소학교는 1913년 6월 4일 설립되었으며, 조선인 자녀의 교육을 담당하는 소사공립보통학교는 1924년 6월 6일 설립되었다. 그리고 현재 오정구에 해당되는 지역의 교육을 담당했던 오정공립보통학교는1931년 9월 16일 설립되었다.
소사심상소학교와 소사공립보통학교는 소사역(현 부천역) 남부인 심곡리에 만들어졌으며, 이 당시 소사역 부근은 계남면사무소, 소사신사, 우편소, 경찰관주재소 등 조선총독부의 통치기관이 모여있는 행정과 경제의 중심지였다. 소사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의 수가 많았으며 그로 인해 일본인 자녀들을 위한 교육기관이 일찍 만들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우리 조선인들을 위한 교육기관은 늦게 만들어졌으며, 학생을 충분히 수용할 수 없을 만큼 학급 수가 적었다.
1930년 6월 발행(소장처-종로도서관)된 <부천군 군세일반>에 의하면 부천군에는 소학교가 1개 있었으며 남학생 48명과 여학생 33명이 다녔으며, 보통학교는 7개소로 남학생 1,485명과 여학생 187명이 다녔다. 이외에도 사립인 일반학교 1개소에 남학생 85명과 여학생 8명, 서당에 남학생 884명과 여학생 56명이 다니고 있었다. 총 2,786명으로 상대적으로 남성에 비해 여성 수가 현격히 적었다는 것과 사설인 서당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사간이학교 설립 과정
소사간이학교는 한다농장(半田農場)의 주임이었던 수등정웅(須藤正雄)이 만들었다. 한다농장은 1930년 경기도 부천군 계남면 중리 3-1에 설립된 농장으로 1936년 부평수리조합 사업구역 내에 일천정(一千町)의 농지에 일천(一千)의 소작인이 있는 대농장이었다.
소사간이학교는 1938년 5월 2일 입학식을 하고, 6월 2일 오전 10시 개교했는데 그 과정이 꽤 오래 걸렸다. 1930년 말에 수등정웅은 농장의 소작인 자녀들을 위해 야학을 설치하였으며, 1932년 4월에 야학을 주학(晝學)으로 고치고 명칭을 언문강습기(諺文講習氣)로 하여 농장부장이었던 이만섭(李萬燮)씨를 교원으로 채용했다. 1936년 허가없는 강습소라 하여 폐교를 당하였으며, 이듬해에 수등정웅은 학교 건물, 학용품, 실습지 등을 갖추어 간이학교로 바꾸었다. 그리고 1938년 4월 천엽교장(千葉校長)과 백태현(白台鉉) 훈도가 와서 5~6월에 입학식과 개교식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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