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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낀 산맥 끝에서 만난 메주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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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낀 산맥 끝에서 만난 메주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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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7일 새벽, 스페인 남부 해안 도시 베라(Vera)에 머물던 우리는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각에 차에 올랐다. 목적지는 안달루시아 알메리아 북부, 시에라 데 로스 필라브레스 산맥의 북쪽 사면에 자리한 작은 산악 마을 세론(Serón)이었다.

스페인을 운전하며 거칠고 황량한 지형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안달루시아(Andalusia) 알메리아(Almería) 주 북부로 향하는 산간 도로는 차원이 달랐다. 짙게 깔린 안개 속에서 굽이진 길을 한참 동안 오르며, '이토록 험준하고 고립된 산길 끝에 과연 마을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오전 8시경, 마침내 해발 800m대의 척박한 마을 세론(Serón)에 도착했다. 알만소라 계곡을 내려다보는 이 마을은 화려한 관광지라기보다 고립과 생존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곳에 가까웠다. 마을 초입에는 스페인 수제 산양유 치즈 공방, '퀘세리아 세로네스 아르테사노(Quesería Seronés Artesano)'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은 여러 박람회에서 오랜 인연을 맺은 안달루시아의 올리브오일 회사 마테오 몬테사노 대표가 "100% 핸드메이드라 물량이 부족해 스페인 내에서도 구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스페인의 발효를 찾는다면 꼭 방문해야 한다"고 강력히 추천한 곳이었다.

퀘세리아 세로네스 아르테사노 치즈 공장 위로는 가족들이 생활하는 공간이 이어져 있었다. 아래에서는 치즈가 만들어지고, 위에서는 그 치즈를 지켜온 사람들이 살아가는 구조였다. 주차장으로 쓰는 마당은 넓고 깨끗했으며, 척박한 산악 풍경과 달리 공방 안팎에는 잘 정돈된 장인의 긴장감이 흘렀다.

차에서 내려 이 회사 Pablo 부장과 치즈 공장 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발효 전문가인 나의 온몸 감각을 깨우는 향기가 덮쳐왔다. 마치 두껍고 거대한 '고소한 우유 냄새의 벽'을 통과하는 듯, 묵직하고 진한 유지방의 향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이어서 그 진한 고소함 사이로 너무나도 익숙하고 쿰쿰한 '메주 발효 향기'가 코끝을 때렸다.

메주는 발효 후 소금물을 더해 간장이나 된장으로 변모하기에, 메주방에서만 맡을 수 있는 원초적인 발효 향을 일상에서 느끼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지구 반대편 스페인의 첩첩산중 산악 마을에서, 한국 경주 왕신의 메주방에서 매일 맡았던 바로 그 향기를 다시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음식은 지역의 역사, 아픔, 기후, 토질 등 모든 것이 결합된 문화의 결정체다.

이 낯설고도 벅찬 감동은 이번 탐방이 단순한 미식 기행을 넘어, 오래 이어져 온 발효의 궤적과 근원을 추적하는 여정임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했다.

사막과 고산이 교차하는 천연 발효실, 세론의 지리적 축복

이 척박한 깊은 산골 마을이 어떻게 알메리아의 발효 및 숙성 식문화가 깊게 남은 곳이 될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은 세론이라는 지역이 품고 있는 기묘한 지리적 떼루아(Terroir)에 숨어 있다. 알메리아 북부 산악지대에 위치한 세론은 2,000m급 고지를 품은 시에라 데 로스 필라브레스(Sierra de los Filabres) 산맥권의 자락과 경사면에 형성된 마을이다. 겨울에는 눈이 내리고, 산에서 내려오는 차고 건조한 바람이 마을을 훑고 지나간다.

세론을 향해 운전할 때 사막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곳은 유럽 대륙에서 보기 드문 사막기후 지대인 타베르나스 사막(Desierto de Tabernas) 및 척박한 배들랜드(Badlands) 지형과 멀지 않다. 스페인 남부의 높은 산맥들이 바다에서 오는 습한 비구름을 막아서는 '비그늘(Rain Shadow)' 효과 탓에, 이 일대는 강수량이 적고 건조한 기후를 띤다. 울창한 나무가 아니라 붉은색 흙과 바위가 그대로 노출되어, 마치 서부 영화의 한 장면처럼 황량하다.

이 '사막 같은 건조함'과 '고산의 서늘함'이 교차하는 이질적인 기후는 발효와 숙성에 유리한 조건이 된다. 치즈나 하몽 같은 발효 저장식품의 숙성 공정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적은 과도한 수분 활성도로 인한 부패균과 유해 곰팡이의 증식이다. 세론 일대의 지중해성 건조 기후와 산맥에서 내려오는 서늘한 바람은 부패균과 유해 곰팡이의 증식을 억제하는 데 유리하다.

건조한 산바람은 치즈 겉면을 안정적으로 굳히며 천천히 내부 수분을 증발시켜 풍미를 고밀도로 농축시킨다. 비가 잦고 습한 기후에서는 쉽지 않은 자연 건조 숙성의 조건이 이곳 산악지대에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마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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